롯데 이재곤이 2010년 8월3일 잠실 두산전에서 9이닝 1실점으로 잠수함 투수로서는 2010시즌 유일하게 완투승을 거뒀다. [스포츠동아 DB]
‘언더핸드·사이드암 선발투수’ 멸종위기 왜?
이강철 4년 연속 15승 넘은 시절 있었지만좌타자 증가·타격기술 진화 잠수함들 실종
태생적 한계…강속구·몸쪽 싱커 생존 조건
김성근감독 조차 믿는 정대현 선발로 안 써롯데 선발 이재곤은 2010년 8월3일 잠실 두산전에서 9이닝 1실점 완투승을 거뒀다. 이 완투가 유독 각별한 이유는 2010년 잠수함 투수가 거둔 유일한 성취였기 때문이다. 아예 ‘잠수함’(오버핸드 정통파와 대칭되는 언더핸드와 사이드암을 통칭한 포괄적 개념) 선발이 ‘멸종위기’에 처한 지 오래다. 현역에서 꼽자면 이재곤과 LG 박현준 정도다. 2005년 신승현(SK)의 12승 이래 두 자리 승수 잠수함 선발이 안 나오고 있다. 지난해 샛별처럼 등장한 이재곤은 8승이었다. 그 많던 잠수함 선발은 다 어디로 갔을까?
○SK의 경우
SK는 명실상부한 한국 최강의 팀이다. 곧 트렌드를 이끄는 팀이라는 의미와 동의어다. SK야구는 장·단기전을 불문하고 막판 접전에 강하다. 김성근 감독은 승부처에서 SK야구를 “불펜야구”라 칭한다. 김 감독은 불펜운영에서 분산을 중시한다. 승리조 개념이 존재하나 상황에 맞춰 변화를 준다. 감독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오버핸드∼좌완∼잠수함에 걸쳐 옵션이 많아야 된다. SK 캠프는 이 옵션을 발굴하는 장이다. 올 시즌 잠수함 사정만 봐도 정대현∼신승현∼이영욱∼박종훈 등이 경쟁한다. 그러나 김 감독이 잠수함 선발을 SK에서 쓴 적은 없다. 신뢰가 두터운 정대현도 예외가 아니다. “야구는 투수”라는 철칙을 가진 김 감독의 투수 용인술은 곧 프로야구 트렌드의 압축판이다.
○잠수함의 계보
김 감독은 태평양 시절, 잠수함 박정현을 선발로 키운 바 있다. 정명원·최창호와 투수3총사를 이룬 박정현은 1989년 19승을 거뒀다. 선발은 아니지만 김현욱(쌍방울)은 1997년 20승으로 다승왕에 올랐다. 앞서 이강철은 1989년부터 4년 연속 15승 이상을 거뒀다. 1998년까지 10년 연속 10승 이상을 올렸다. 이강철에 앞서서 한희민(빙그레)이 있었다. 1993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해태 선동열과 붙어 15회 완투를 펼친 박충식(삼성), 1990년 신인 최초 노히트노런 투수 이태일(삼성)도 있었다. 선발은 아니지만 해외파로 임창용(야쿠르트)과 김병현(라쿠텐)이 있다.
○왜 사라지나?
이런 잠수함 특급들은 역설적으로 지금의 상황을 반증한다. 이효봉 스포츠동아 해설위원은 “잠수함 선발은 태생적으로 좌타자가 걸림돌이다. 게다가 좌타자가 많아지는 추세다. 성공하려면 임창용처럼 빠르던지 정대현처럼 몸쪽싱커를 잘 던져야 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라면 잠수함을 굳이 시도할 필요가 없다. “예전에는 학교감독이 하라면 했지만 지금은 부모들도 아는 시대다.”
양상문 전 롯데 투수코치는 “결국 보통의 투수가 투구 스타일의 특이함과 공끝 변화에 의존해 정통파에서 잠수함으로 전환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했다. 결국 좋은 재목부터가 희귀하다는 얘기다.
반면 갈수록 타격 능력은 진화하고 우타자마저 바깥쪽 흘러나가는 슬라이더에 대한 적응력이 생기고 있다. ‘전설’들은 말할 것 없고, 이재곤은 싱커, 박현준은 스피드에서 경쟁력이 있기에 버틸 수 있다는 얘기다.
잠수함 선발이 사라지고 있다. 롯데 이재곤과 LG 박현준(사진 위)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사진 아래는 잠수함 잡는 좌타자 3인. 왼쪽부터 삼성 이영욱, 두산 김현수, LG 이병규. [스포츠동아 DB]
○아직 가치는 있다
메이저리그 전문가 송재우 IB스포츠 국장은 “100년의 노하우가 있는 것”이라는 말로 미국야구에서 잠수함 선발이 없는 이유를 말했다. “댄 퀸즌베리나 덕 존슨이 있었지만 다 마무리투수였지 대성한 선발투수는 없다”고 했다. 김병현의 선발전환 실패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야구도 줄어드는 추세다. 양 코치는 “타격기술과 파워 향상으로 스피드 있는 볼이나 아래로 떨어지는 공이 아니면 견디기 어렵다”고 평한다.
야구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잠수함 선발이 사라지는 현상이 오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효용성은 하나같이 긍정한다. 폼 자체에서 희소성의 가치가 있기에 컨트롤과 운영능력이 있으면 승부처 때, 잠수함에 약점을 갖는 우타자 상대로 흐름을 끊는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결론이다.
○통계의 역설?
지난해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잠수함에 강한 선수는 1위 이영욱(삼성) ,2위 김현수(두산), 3위 큰 이병규(LG)로 전원 좌타자였다.
반면 LG 이진영(1할)은 최하위였다. LG 이대형과 SK 박정권, KIA 김원섭도 하위 10위 안이었다. 잠수함이 좌타자에 취약하다는 것은 보편적 현상이지 절대진리는 아니라는 얘기다.
타격 7관왕 롯데 이대호는 잠수함 상대로 타율 4할을 기록, 전체 5위다. 이대호는 우투수, 좌투수보다 잠수함에 더 강했다. 그러나 SK 정대현에 한해서는 꼬리(8타수 무안타)를 내렸다.
양 코치는 “심리적인 데서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천적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야구는 예민하고 오묘하다. 곧 잠수함이 숨쉴 공간은 남아있다는 얘기다.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