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율화의 The Fan] 하위팀 팬들이 야구에 열광하는 이유

입력 2011-02-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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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야구팬의 행복은 응원팀의 성적순이다. 최근 2년간, 한화팬인 내 삶을 돌이켜보건대 확실히 그렇다.

나날이 늘어가는 다크서클과 자학성 개그, 그에 비례해서 현저히 줄어드는 머리숱. 게다가 만나는 사람마다 한번씩 던지는 모진 말들은 가슴에 아프게 박히곤 했으니…. 아직 내가 화병으로 드러눕지 않은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쯤 되면 ‘나는 이 지경에도 왜 야구를 볼까’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스스로 던져 보게 된다. 잠시 관심을 끊고 관망하는 자세로 돌아갈 법도 하건만, 희한하게도 야구에 대한 열정은 예전만큼, 아니 예전보다도 더 활활 타오르니 말이다.

주위의 한화팬들 역시 마찬가지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우리네 질긴 팔자를 원망하다가도 다음날 야구장에 가보면 여기저기서 주황색 풍선 막대를 들고 눈을 마주치며 씨익 웃는다. 뿐인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LG팬들 역시 그렇다고 고백하고 있으며, ‘암흑기’를 논함에 있어 빼면 섭섭해 할 롯데팬들도 마찬가지였다고 그 시절을 회상한다.

그렇다면 하위팀의 팬들이 여전히 야구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로 우리는 악과 깡만 남은 독종팬일까?

팬심이란 참으로 이상한 형태의 사랑이다. 아무 이유 없이 끌려 팬이 되었듯, 성적이 이 지경이어도 여전히 야구는 재미있고 내 팀은 사랑스럽다.

연패 끝에 찾아오는 승리의 순간은 100번을 돌려봐도 소름끼치게 감격적이며, 어쩌다 나오는 거짓말 같은 호수비는 가슴 뭉클하게 대견하다. 고군분투하는 에이스의 투구는 그 어떤 명화보다도 심금을 울리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신인들을 보면 자식 키우는 재미가 이런 것일까 싶다. 수없이 많은 빈자리에 퍼즐 조각을 이리 저리 맞춰 보는 맛이랄까.

얼마나 좋은가! 완성해 놓은 퍼즐에서 하나라도 빠질세라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최근의 초라한 성적이 전부가 아님을 잘 알기 때문에 난 여전히 야구와 이 팀을 사랑한다. 인생사가 그렇듯 야구에도 부침(浮沈)이 있을 뿐이라고, 지금 이 시간이 지나가면 이글스가 다시 나를 으쓱하게 해줄 거라고, 주문처럼 기도처럼 중얼거리며 다가오는 개막을 기다린다.

어려울 때 함께 한 사람은 평생을 잊지 못한다. 어쩌면 팀이 가장 힘들어 할 이 시기에, 함께 괴로움을 견딘 잊지 못할 최고의 팬이 되고 싶다. 그게 영원히 최고인 나의 팀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이니까.

구율화 변호사

야구선수들의 인권 보장을 위한 법과 제도 마련에 관심이 많다. 야구계 변방에서 꾸준히 팬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

[스포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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