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렛 미 인’-‘뉴문’ 흡혈귀 비교

입력 2011-04-26 03: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절제귀신 vs 촐랑귀신
너무도 달랐던 ‘鬼格’

《뱀파이어가 영화 속 흥미로운 소재인 이유는 그것이 숨겨진 욕망의 기호요 상징이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들은 대부분 숙명적 사랑에 빠지고 그래서 갈등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덜미를 물어 본능에 충실할 것인가, 아니면 본성의 저주를 극복하고 운명적 사랑을 수호할 것인가.》

최근 본 흡혈귀 영화 중 가장 눈여겨볼 작품은 2008년 제작된 스웨덴 영화 ‘렛 미 인(Let The Right One In)’과 할리우드산 ‘트와일라잇(Twilight)’이었다. 두 영화는 뱀파이어를 10대 소녀, 소년으로 설정하는 혁신으로 충격을 주었다. ‘렛 미 인’이 더 사색적인 예술적 가치를 지향했다면, ‘트와일라잇’은 ‘샤방샤방’한 남녀주인공을 통해 ‘10대들의 데이트용 흡혈귀영화’라는 상업적 음모(?)를 심어놓았다.

아, 예술적 성취와 상업적 성취를 각각 거둔 두 영화는 왜 이리도 질적인 차이가 극명할까. ‘렛 미 인’과 ‘트와일라잇’의 두 번째 시리즈인 ‘뉴문(New Moon·2009)’을 비교해보자.

‘렛 미 인’은 숨이 막힐 만큼의 절제 미학을 담고 있다. 대사는 꼭 필요한 부분에서조차 최소화되어 있고,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가 나누는 몇 안 되는 대화 역시 시어(詩語)처럼 함축적이다. 영화의 메시지를 응축한 부분은 이 영화의 위대한 미장센(화면 속 등장인물이나 사물들의 주도면밀한 배치를 통한 연출)이다. 눈 내리는 밤하늘을 창밖으로 바라보는 소년의 모습(사진①)은 압도적이다. 유리창에 비쳐 유령처럼 보이는 소년은 모습 그대로 ‘유령처럼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고통스럽다. 아버지의 결핍을 느끼는 동시에 ‘왕따’에 시달리는 소년의 내면이 이 침묵하는 장면에 오롯이 담겼다.

반면 ‘뉴문’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수다스럽다. 영화 속 청춘남녀는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한다’를 남발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100배 정도 더 말을 하지만 정작 뇌는 없는 것만 같다. 일단 10대 소녀관객의 오감을 자극해야 한다는 목적에서인지, 남자주인공들은 초콜릿 복근을 과시하려 안달이 났다. 여주인공이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져서 머리에 피가 흐르자, 뒤쫓아 온 늑대소년이 멀쩡하게 입고 있던 티셔츠를 훌러덩 벗어(사진②) 돌연 그녀의 피를 닦아주는 게 아닌가(이런 부자연스러운 시추에이션이?).

게다가 난 이 영화 속 뱀파이어 청년처럼 10원짜리 표정을 짓는 주인공을 전에 본 적이 없다. 사랑하는 소녀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 자의 모습을 보라(사진③). ‘소녀 관객들아, 정말 멋지지 않니? 이렇게 애상적이면서도 로맨틱한 표정을 지을 수가! 완전 반했지?’란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

반면 ‘렛 미 인’에서 흡혈귀 소녀를 보여주는 방식은 시적이다 못해 사색적이다. 소녀가 흡혈귀의 본색을 드러낸 뒤 소년을 괴롭히는 불량배들을 찢어 죽이는 클라이맥스 장면에서조차 영화는 차가운 호흡을 유지한다. 입가에 피가 철철 흐르는 흡혈귀의 모습이 아니라 오로지 슬프고도 행복해하는 야릇한 두 눈만을 보여준다(사진④). 보여주기보다는 더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킨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