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커스] “야구도 예의!…사구 후 사과 필요하다” 64%

입력 2011-05-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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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 던진 투수, 사과해야 하나” 야구계 파워엘리트 50명 설문

“미안하다는 제스처면 오해 풀고 기분 안 상해”
12명 “모자 벗고 목례 등 적극적 행동” 요구도
30%는 “공 맞으면 공짜출루…굳이 필요없다”
얼마 전 박진만(SK)의 헬멧을 맞힌 KIA 투수 서재응은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하긴 했지만 ‘사과 동작’이 TV 중계 화면에 잡히지 않으면서 수많은 팬들의 공분을 샀다. 반면 지난 7일 삼성전에서 똑같이 박한이의 헬멧을 맞힌 LG 봉중근은 덕아웃으로 향하는 박한이에게 다가가 미안하다며 직접적인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

이런 예는 머리 쪽으로 볼이 날아간 극단적인 경우이기도 하지만, ‘사구를 던진 투수는 타자에게 사과해야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야구계의 뜨거운 화두였다. 일부에서는 ‘사구도 게임의 일부다. 그라운드는 전쟁터인데,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반대 측에서는 “인플레이 상황이 아닌데 적어도 미안하다는 표시 정도는 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나타낸다. 특히 서재응의 경우처럼 TV 중계 화면을 본 팬들이 온라인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하면서 사구를 던진 후 투수의 행동은 자주 이슈가 되곤 한다. 이에 스포츠동아는 야구계 파워엘리트 50명에게 ‘사구 던진 투수, 사과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설문을 실시했다. 선수들의 공정한 의견 반영을 위해 팀당 똑같이 투수 2명·타자 2명을 대상으로 했다.


○한국적 현실 반영이 필요하다

설문 분석에 앞서 이번 결과는 ‘투수가 실수로 타자를 맞힌 일반적인 상황이라는’ 가정이 필요하다. 일부러 타자를 맞힌 투수가 사과할 일도 없거니와(과거 선배의 지시로 타자를 맞힌 신인급 투수는 타자에게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가 이닝 종료 후 소속팀 선배들에게 혼이 난 경우도 있었지만), 9회말 2사 만루에서 끝내기 사구를 얻은 타자가 투수에게 사과를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 응답자 50명 중, 64%에 이르는 32명이 ‘어느 정도 사과 표시는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똑같이 16명을 대상으로 한 현역 투수와 타자의 응답 결과는 예상대로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사과표시를 해야 한다’는 의견의 대부분은 ‘한국적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근거가 많았다.

다만, 사과 표시를 하더라도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에 따라서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의견이 갈렸다. 절대 다수가 기준으로 제시한 행동은 ‘모자를 벗느냐 아니냐’였다. 즉 모자챙을 살짝 잡는다든지, 가벼운 손짓을 하는 경우(소극적 행동)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의견은 32명 답변자 중 20명이었다. 이들은 ‘모자를 벗고 목례를 하는’ 행동은 굳이 필요 없다고 했지만, 나머지 12명은 상황에 따라 목례를 하든가 모자를 벗는 등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왜 사과해야 하는가

메이저리그에서 사구를 던졌다고 사과하는 투수는 찾아 보기 힘들다. 반면 일본은 한국보다 표현 방법도 적극적이고 빈도도 훨씬 많다. 대부분 응답자들은 “선후배 관계가 명확한 우리 야구 현실과 동업자 정신을 고려했을 때 어느 정도 미안하다는 의사 표시는 필수적”이라고 답했다.

감독을 지낸 한국야구위원회(KBO) 김재박 경기감독관은 “우리는 선수들끼리 다 알고, 선후배 문화가 뚜렷하다. 게임에 지장을 주는 일도 아니라 간단하게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게 서로 기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했다. LG 이병규(9번)는 “서로에게 예의고, 지켜보는 팬들에 대해서도 예의”라며 “물론 투수가 모자를 벗어도 타자 입장에서 달려나가 싸울 땐 싸우겠지만, 아무래도 인사를 하면 오해가 줄어 들 것”이란 견해를 밝혔다. 투수인 넥센 송신영은 “잘못 맞으면 크게 다칠 수 있는 게 사구”라며 “일부러 한 게 아니면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타자가 후배라도 모자챙을 살짝 만지는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했다. KIA 마무리 유동훈 역시 “타자들도 고의성 유무를 잘 안다. 오해가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손 한번 들어주는 것이 좋다”면서 “이는 우리 팀 선수들을 보호하는 차원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효봉 스포츠동아 해설위원은 “몸에 맞는 공이 논란이 되는 경우는 모두 머리 등 위험한 부위에 맞았을 때다. 이런 위험한 경우에는 사과 표시를 반드시 해야 한다”며 “사구도 경기의 일부라고 하지만, 사과도 경기의 일부일 수 있다. 사과를 한다고 상대방에게 지고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사과? 필요 없다

타자인 두산 김현수는 “몸에 맞는 볼은 경기 중의 일부이기 때문에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했고, 삼성 박석민 역시 “타자 입장에서 투수가 사과 의사를 밝히면 고맙겠지만 굳이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야구를 하다보면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게임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뜻. 또 다른 타자인 넥센 김일경 역시 “일부러 맞힌 게 아니면 투수도 짜증이 날 것”이라며 “만약 하위타선에서 사구가 나왔을 경우를 생각해보라. 그러니까 사과는 굳이 필요 없다”고 했다. KIA 이용규는 “어차피 약간의 고의성이 담겨져 있다면 타자들은 물론 벤치에서도 다 느낀다. 고의가 아니라면 사과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두산 투수인 이현승은 “타자가 홈런이나 안타를 친 후에 투수에게 사과하는 경우가 있는가”라고 되물은 뒤 “몸에 맞는 볼도 엄연히 경기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일 뿐”이라고 했다. 사구와는 반대로 홈런을 맞은 투수 앞에서 과도한 세리머니를 하는 타자들도 적지 않다는 것은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이다.

양상문 스포츠동아 해설위원은 “투수 코치 시절, 투수들에게 ‘타자는 우리 집에 들어온 강도’라고 가르치곤 했다”면서 “그라운드는 팀 대 팀간, 타자와 투수간 싸우는 전쟁터다. 투수가 타자를 맞혔다고 미안해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했다. 양 위원은 “타자들은 몸에 맞을 경우, 1루에 걸어 나가는 혜택을 받고 투수는 출루를 허용하는 벌을 받는다. 그것이면 족하다”고 했다. 극단적으로 가정했을 때, 9회 말 2사 만루 끝내기 상황에서 타자를 맞힌 투수가 사과 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김도헌 기자 (트위터 @kimdohoney)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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