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동성애 등 성적 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조심스런 교정이 이뤄진 것은 불과 10여년 사이의 일이다. 1980년대 말 민주화의 조류를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좀 더 열린 시각이 제기됐지만 유난히 성과 관련한 부문에서는 쉽지 않았다.
1997년 오늘, 중국의 유명 감독 왕자웨이(왕가위·사진)가 내한했다. 그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감독상을 수상했기 때문이 아니라 상당히 민감한 시점에 한국을 찾았던 탓에 언론과 관객의 시선이 집중됐다.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수입불가 판정을 받은 상황이었다. 사유는 ‘동성애’였다. 이 작품은 장궈룽(장국영)과 량차오웨이(양조위)가 주연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배경으로 두 남자의 관계와 이별을 그린 이야기. 6월 말과 7월11일 두 차례 심의를 거치며 일부 장면이 편집됐지만 검열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미 ‘바운드’ ‘크라잉 게임’ ‘필라델피아’ 등 동성애를 소재로 한 외화들이 개봉한 상황에서 공륜의 주장은 공허했다. 더욱이 내한한 왕자웨이 감독은 “사람들 사이의 불안정한 관계를 그렸을 뿐”이라고 말했고 많은 평자들 역시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둔 불안한 관계와 심리”가 주제라고 분석했다.
왕자웨이 감독은 수입불가 판정에 “안타깝다”고 말했고 영화는 1년 동안 개봉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이듬해 재심의를 거쳐 9월 개봉했다. 이 영화가 바로 ‘해피투게더’이다.
윤여수 기자 (트위터 @tadada11)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