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 덕아웃 이야기|한화 장민제] 야구선수, 그것은 아버지의 꿈이었습니다

입력 2011-07-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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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영은의 덕아웃 이야기 | 한화 장민제


만 12세. 광주 화정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장민제(한화·21)는 그 어린 나이에 수술대에 올라 팔꿈치에 칼을 댔다. 뼛조각도 제거해야 하고, 너덜너덜해진 인대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 모든 게 야구를 지나치게 좋아해서 생긴 일이었다.

유년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따라나선 광주구장에서 해태 에이스 이대진을 발견한 꼬마 장민제는 “나도 어른이 되면 꼭 투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버지 장지상(55) 씨 역시 말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까지 야구 선수였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도저히 야구를 할 수 없었던 아픔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자신보다 더 야구를 좋아하는 장남의 손에 꼭 야구공을 쥐어 주고 싶었다. “공 던질 때마다 다들 ‘우와’ 하니까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요. 학교에서도 친구들보다 훨씬 더 많이 던지고, 집에 오면 아버지를 포수로 앉혀 놓고 또 던졌어요. 관리하는 법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던지고 또 던졌죠.” 그러다 어느 순간 탈이 난 것이다. 장민제는 “초등학교 때 그런 수술을 받는 선수도 흔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처음 찾아간 병원에서는 “투수를 하면 안 되겠다”고 했다. 정 야구를 하고 싶으면 포수가 낫겠다면서. 처음부터 ‘투수’가 목표였던 꼬마의 고개가 푹 꺾였다.

하지만 물어물어 찾아간 서울의 한 병원에서 희망을 줬다. 어렸을 때 뼛조각을 발견한 게 차라리 다행일 수 있으니, 일단 수술하고 잘 회복하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프로 선수들도 힘겨워 하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과 재활이 1년 반 동안 이어졌다. 아프고 지루하고 짜증나고 눈물났다. 그래도 꼭 투수가 되고 싶어서 끈질기게 참았다. 그리고 그 결과 장민제는 투수의 꿈과 프로야구 선수의 꿈을 모두 쟁취하고 말았다. 팔꿈치 수술 전력과 고교 3학년 때의 부진으로 연고지 팀 지명을 받는 데는 실패했지만, “형들도 좋고 코치님들도 좋고 모두가 가족적인 한화에서 뛰게 돼 운이 좋은 것 같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공사장 일용직, 관광버스 운전, 화물차 운전…. 아버지는 어렵고 힘든 일로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정성스레 아들의 야구를 뒷바라지했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의 옛 희망을 대신 이뤘다. 아들이 등판하는 날이면 “본때를 보여줘!”라며 기를 불어넣는 게 아버지의 기쁨 중 하나다. 장민제는 “내가 등판하는 날이면 아마 아버지가 줄담배 좀 피우실 것”이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스포츠1부 기자 (트위터 @goodgoer)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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