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진짜 MVP는 내 두 아들”

입력 2011-07-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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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로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아버지로서 두 아들에게 당당하고 싶었다. LG 이병규가 23일 올스타전에서 연장 10회말 승부치기 2사 1·3루서 삼성 오승환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친 뒤 두 팔을 번쩍 들어 기뻐하고 있다. 잠실 | 김종원기자 (트위터 @beanjjun) won@donga.com

LG이병규, 역대 최고령·생애 첫 ‘미스터 올스타’

지난해 아버지 잃고 나니 후회 밀려와
야구장 찾은 두 아들에 좋은 추억 선물
연장 10회 결승타로 서군에 승리 안겨
“두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빠도 괜찮은 야구선수라는 것을….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드리고 싶었어요. 눈물 말고 다른 것을….”

터벅머리의 적토마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았다. 그리고 환한 미소 속에 MVP 트로피에 진한 입맞춤을 했다.

2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 LG 이병규(37)가 생애 첫 ‘미스터 올스타’에 올랐다. 1-0으로 앞선 1회말 1사 1루서 1타점 우중간 2루타를 날렸고, 3-0으로 앞선 3회말 우익선상 2루타를 터뜨렸다. 9회까지 2루타 2방으로 4타수 2안타 1타점. 그리고 연장 10회말 승부치기 때 좌익선상에 떨어지는 결승타로 웨스턴리그에 5-4 승리를 안겼다.

기자단 투표에서 총 42표 중 34표의 몰표를 받았다. 만 36세 8개월 28일. 종전 1996년 쌍방울 김광림(35세 4개월 14일)을 넘어 역대 최고령 올스타전 MVP가 됐다. LG 선수로는 1997년 유지현에 이어 2번째 올스타전 MVP다.

기쁘기 그지없는 날이었지만, 그는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아버지부터 떠올렸다.

“우리 세대 아버지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저희 아버지는 참 엄하고 무서웠어요. 저도 아버지에게 살갑게 다가가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작년 아버지를 잃고 나니 후회가 밀려들더군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마지막 일주일 동안 흘린 눈물밖에는….”

아버지를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던 그는 이내 아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절대 아버지처럼 무뚝뚝하고 엄하게 대하지 않겠노라 다짐하게 만드는 두 아들 승민(7)과 승언(5). 이날 모처럼 야구장으로 나들이를 왔다. 아빠는 타석에 들어서기 전, 그리고 좌익수 자리에 서서 버릇처럼 아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아빠처럼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두 아들은 1루쪽 관중석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신호를 보내곤 했다.

“올스타전 출전도 제가 일본에 진출하기 전인 2006년이 마지막이었네요. 두 아들은 그 전에 제가 야구한 건 당연히 기억을 못해요. 작년 올스타전에는 참가하지도 못했고…. 이젠 아들도 아빠가 야구선수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됐어요. 큰놈은 집에서 매일 방망이를 휘두르며 놀고 있을 정도니까요.”

그는 지난해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일본에서 돌아왔지만 과거와는 달리 자리가 보장되지 않았다.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5월 5일 어린이날. 야구선수인 까닭에 다른 부모들처럼 아이들을 놀이공원에라도 데려갈 수 없는 처지여서 잠실구장으로 초청했다. 그러나 두산전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다. 2-4로 뒤진 9회말 1사 1루서 대타로 나섰지만 2루수 앞 병살타. 경기 종료를 장식한 것이 그가 아들에게 준 어린이날 선물의 전부였다.

“그 이후 애들을 야구장에 부르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엔 올스타전에 선발로 출장하게 돼 아들 둘을 오라고 했죠. 솔직히 MVP에 욕심이 났어요. 그래서 아침 일찍 야구장에 와서 연습도 했고요. 아빠가 야구를 꽤 하는 선수였다는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었어요. 기를 펼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어요. 야구하면서 이렇게 좋은 일이 있을지 몰랐는데…. 다시 또 이런 날이 오진 않겠죠?”



이재국 기자 (트위터 @keystonelee)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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