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5명 월 1000만원 벌면서 부모 외면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최한수(가명·74) 씨는 혼자 겨우 누울 수 있는 쪽방에 산다. 1998년 외환위기 때 사업에 실패한 뒤 집을 나왔다. 이후 부인 및 아들 셋과 연락을 끊고 지낸다.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기초생활보장 급여로 매달 나오는 43만 원이 전부였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기초생활보장 급여 수급자 현황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둘째 아들이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가족들은 “자식을 버린 아버지다”며 담당 공무원의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자녀에게 부양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급여 대상에서 제외될 뻔했던 최 씨는 가족 관계가 단절된 점이 인정돼 계속 혜택을 받게 됐다.
노순덕(가명·83·여) 씨의 둘째 아들은 40억 원의 자산가다. 노 씨는 아들과 떨어져 살면서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지만 돈 많은 아들을 둔 ‘죄’로 자격을 잃었다. 아들이 노 씨를 부양할 의도가 없는데도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다.
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는 157만 명 중에서 부양해 줄 가족이 있는 3만3000명의 수급 자격을 취소했다고 17일 밝혔다. 이 가운데 부양 의무자의 월 소득이 500만 원을 넘는 사례는 5496명이었다. 1000만 원을 넘는 경우도 495명이나 됐다.
당초 수급 자격이 취소될 수 있다고 사전에 통보받은 인원은 10만4000명이었다. 그러나 21%(2만2000명)는 오랫동안 가족 간 교류가 없었다는 점이 인정돼 구제됐다. 부양 의무자 기준은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할 때 만들었다. 자식이 부모를 부양할 책임이 있다는 사회적 정서를 반영했다. 하지만 전통적 의미의 효 사상이 많이 사라진 데다 가족 해체가 일상화하면서 능력이 있는데도 부양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혼과 재혼이 이어지면서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파괴되는 현실도 이번 조사에서 확인됐다.
2007년 이혼한 뒤 혼자 두 아들을 키우는 정숙자(가명·46·여) 씨도 그런 사례다. 전남편은 양육비를 주지 않았다. 아들의 군 입대를 앞두고 면제 사유를 인정받으려고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정 씨 모자에 대한 부양책임이 있지만 전남편은 외면했다. 이런 사정으로 정 씨는 수급 자격을 유지했다.
부양 의무자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지적을 감안해 복지부는 내년부터 이를 최저생계비의 130%에서 185% 이상으로 완화할 예정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부양의무자의 월 소득이 4인가구 기준으로 256만 원(최저생계비 185%)을 넘는 경우만 수급자격을 박탈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