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뒤엔 아무도 없었지만…
그의 앞엔 어떤 장애도 없었다
출발선에 선 그의 이름이 호명되자 관중석에선 우레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29일 대구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400m 준결승 3조 7번 레인. ‘블레이드 러너’로 잘 알려진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5·남아공)였다. 출발 총성과 함께 그 또한 힘차게 스타트 블록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갔다.그의 앞엔 어떤 장애도 없었다
질주본능을 타고난 치타가 맹렬히 초원을 가로지르듯 피스토리우스는 성큼성큼 보폭을 넓혀나갔다. 그러나 전날 치러졌던 예선과는 역시 수준차가 있었다. 첫 코너를 돌자마자 펼쳐진 직선주로에서부터 뒤로 밀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또 한번의 코너를 돌 무렵에는 함께 출발한 7명의 등을 바라보며 뛸 수밖에 없었다.
응원의 함성은 더욱 커져갔다. 단순히 약자에 대한 배려를 넘어선, 인간의지에 대한 찬사였는지 모른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피스토리우스는 이미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벅차고 감격적인 장면을 수차례 보여줬던 것이다. 46초19로 3조 최하위, 준결승 출전자 총 24명 중 22위.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들이 대부분 트랙에 엎드려 가쁜 숨을 몰아쉬던 참이었다. 피스토리우스는 함께 뛴 선수들에게로 차례차례 다가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상위 2명에게만 주어지는 결승 진출권을 따내지 못해서인지 털썩 주저앉아 있다가 피스토리우스가 건넨 손을 잡고서야 일어서는 선수도 눈에 띄었다. 그 순간 피스토리우스가 내민 손의 의미는 또렷해졌다.
고난과 역경.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사의 관문이다. 29일 대구스타디움에선 성치 않은 몸으로도 좌절보다는 도전, 절망보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의족 스프린터’의 질주와 우정의 손놀림이 보는 이들의 가슴에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대구 | 정재우 기자 (트위터 @jace2020) ja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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