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베이스볼] 큰 경기에 강한 남자…한국시리즈서만 7승

입력 2012-05-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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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기록위원.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원조 가을사나이…까치 김정수

1980년대 야구를 대표하는 인물은 ‘까치’였다.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주인공. 억압받던 시대 아웃사이더들이 모여 돌풍을 일으키는 스토리에서 ‘까치’는 버림받은 세대를 상징했다. 해태 김정수는 반항적인 ‘까치’ 이미지 그대로였다. 1986년 한국시리즈에서 루키 김정수는 3승을 거두며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해태의 용맹성과 딱 들어맞는 선수였다. 불같은 강속구와 들쭉날쭉한 컨트롤. 페넌트레이스에선 조용하다가도 가을만 되면 힘을 냈다.


빠른공·마구 커브에 장효조·이승엽도 긴장
타고난 배짱+강심장 ‘가을까치’ 명성 떨쳐
해태정신? 군기 아닌 승리·돈에 대한 갈망

꼼꼼한 KIA 원정기록원 동영상과 씨름 중
“악동 아웃사이더…설렁설렁했던 과거 후회
난 섬세한 사람…제대로 야구 해보고 싶다”



○우리에 갇힌 호랑이

김정수는 올해 3월부터 KIA의 원정기록원으로 활동한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코치를 그만둔 뒤 구단의 요청대로 일하고 있다. KIA와 상대할 팀의 경기를 미리 관찰하면서 장단점과 선수들의 특징을 분석해 보고하는 것이 임무다. 시즌 시작과 동시에 전국을 돌아다녔다. 휴일도 없다. 매주 월요일 관찰한 경기를 토대로 보고서를 만들어 팀에 전달해야 한다. 컴퓨터로 작성하는 분석 프로그램을 익히자마자 현장에 파견됐다. “매일 긴장하고 있다. 아직 프로그램에 익숙하지 않고, 보고서를 많은 사람이 보기 때문에 대충할 수도 없다. 성격상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선수시절 설렁설렁하는 이미지로 비쳐졌지만 사실 난 디테일한 사람이다. 대충하는 것은 스스로 용납하지 못한다.”

타 구단 후배들에게 일일이 물어가며 정보를 분석한다. 그라운드에서 얻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라 생각해 더욱 꼼꼼하게 분석하고 정리한다. 기자가 숙소를 찾았을 때도 동영상을 반복해 보면서 보고서와 씨름 중이었다. “만나는 사람도 없다. 매일 경기 끝나면 숙소로 돌아와 영상만 본다. 술도 안한다. 술을 마시면 그날 경기의 기억이 사라질까봐 안 한다. 좁은 방에서 홀로 머물다 경기장으로 간다. 담배만 늘었다.”


○한국시리즈 3-2-1-1승

1986∼1989년 해태가 4연속 우승을 달성할 때 한국시리즈에서 7승을 거뒀다. 한국시리즈 역대 최다승이다. 큰 경기에서 더욱 무서운 투수, ‘강심장의 사나이’로 평가받았다. 과연 타고난 배짱의 사나이였을까. “나도 긴장했다. 다만 긴장을 드러내지 않았고, 평소처럼 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86년 한국시리즈 때 어느 기자가 긴장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연고전 때처럼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그렇게 했다. 다른 선수들이 한국시리즈라고 긴장할 때 나는 평소처럼 게임을 했다.”

종잡을 수 없는 빠른 공과 왼손타자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다 떨어지는 커브는 트레이드 마크였다. 당시 삼성의 최고 타자 고(故) 장효조는 김정수가 선발 등판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식욕도 사라진다고 했다. 김정수는 일부러라도 삼성 벤치를 찾아갔다. “형님 나 왔소”라고 인사까지 했다.

지금은 전설이 된 ‘해태정신’에 대해 물었다. 대답은 의외였다. “사람들은 선후배의 엄격한 기강 등을 얘기하지만 사실은 승리에 대한 욕심이었다. 우리 선수들은 누구보다 지기 싫어했다. 이겨야 돈이 생겼기에 열심히 했다. 승리와 돈에 대한 헝그리 정신이 해태를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한두 번 이기다보니 팀의 분위기가 됐다. 다른 팀에게는 없는 해태만의 단합대회는 동질의식을 심어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해태의 단합대회는 유명했다. 전반기가 끝나면 모든 선수들이 고기와 소주를 박스째 싣고 야외로 가서 하나가 됐다. 당초 선수들만의 행사였다. 구단의 지원이 없었다. 이후 직원들도 참가하는 전통이 됐다.


○아날로그 시대의 본능으로 했던 야구

18년의 선수생활. “머리 아프지 않게, 쉽게 했다. 내세울 야구는 아니다. 웃기게 했다”고 정리했다. 타고난 힘을 바탕으로 ‘용감하게’ 던졌다. 컨트롤이 나빠 포볼은 많이 내줘도 실점은 적었다. 한 이닝에 4사구를 4개나 주고도 실점하지 않았다. “삼성전이었다. 포볼과 사구를 준 뒤 3루 땅볼로 원아웃을 잡았다. 도루 실패로 투아웃을 만들고, 또 사구와 포볼을 내줬다. 2사 만루를 삼진으로 끝냈다. 어느 누구도 못한 기록이라고 들었다.”

문제는 벤치였다. 점수는 안 주지만 누구도 예측 못하는 공에 감독이 더욱 살 떨려 했다. 이후 김응룡 감독은 김정수가 4구를 2개 이상만 내주면 이닝과 관계없이 교체했다. 결국 통산 92승에서 선수생활은 끝났다. 1987년 4월 일주일에 4경기에 나가 4패를 기록했다. 선발로 2번, 중간계투로 2번 나가 만든 진기록이다. 김 감독에게 주지 못한 신뢰가 문제였다.

심판이 타임을 부른 상태에서 상대 타자를 맞혀버린 일도 있었다. “롯데전에서 고(故) 조성옥 타석 때였다. 타자가 타임을 불렀는데 이미 나는 피칭에 발동이 걸렸다. 의도는 없었지만 때렸다. 타자가 공에 맞고 쓰러졌는데 노카운트였다. 조성옥은 아파서 쓰러졌고, 양 팀 벤치가 모두 뒤집어졌다. 그래도 완봉으로 끝냈다.”


○전설의 김정수를 만들어준 마구 커브

광주진흥고 시절 직구밖에 던지지 못하는 투수였다. 1980년 한일고교야구대회에 출전했다가 동대문구장에서 일본의 구도 기미야쓰(일본프로야구 통산 224승의 왼손투수)가 던지는 커브를 보고 배워서 전설을 만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공을 구도가 던졌다. 아래로 떨어지는 드롭이었다. 어떻게 하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물었다. 엄지와 중지의 독특한 스냅을 알려줬다. 이후 눈을 감고도 던질 수 있도록 연습했다. 난 한다고 마음먹으면 완벽하게 한다. 덕분에 야구를 18년이나 했다. 지금도 고맙게 여긴다.”

왼손 김정수의 커브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는 일화 한 토막. LG 김상훈과 OB 김형석은 김정수가 커브를 던지면 비명을 지르며 타석에서 벌러덩 뒤로 넘어졌다. 머리를 향해 오는 것처럼 보였던 공은 스트라이크였다. 두 팀의 벤치는 물론 관중도 웃었지만 왼손타자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삼성 이승엽은 김정수에게 “커브를 던질 때 투심 그립으로 쥐시죠? 그렇게 던지는 사람 처음 봅니다”고 했다. 그만큼 김정수를 연구하고 경계했다. “왼손타자랑 경기하면 언제나 즐거웠다”고 김정수는 웃었다.


○아웃사이더, 후회, 그리고 …

선수 때 연봉협상 불만으로 유니폼을 반납했다. 악동 이미지가 심어졌다. 훈련도 대충, 야구도 대충 했다. “석 달 해서 6승 하고 1년을 쉬는 식이었다. 목적의식이 없었다. 지난 세월이 후회스럽다. 아웃사이더로 지냈고, 혼자만의 생각이 강해 타협도 하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선수로서 억울한 시대였다. 25% 연봉상한선이라는 악법에 좌절도 했다. 10승을 하고도 연봉이 고작 1000만원 오르던 때였다. 지금은 선수시절 만들어진 선입견과 싸우고 있다. 한화 코치 시절 2군 훈련 때였다. 어느 선수가 대들었다. 훈련을 시키자 “코치님도 선수 때 열심히 훈련했느냐”고 했다. 김정수는 말했다. “그래 나 운동 안했다. 너도 마흔 살부터는 운동하지 마라”고.

41세에 유니폼을 벗은 뒤 코치, 스카우트, 원정기록원을 하고 때로는 백수로도 지냈다. 야구 외에 다른 것을 해본다는 생각은 아직까지 들지 않는다고 했다. “아직 야구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호박이라도 잘라야 하는데 나는 칼집에서 칼을 뽑다가 도로 넣었다”고 했다.

50세. 인생의 늦여름을 지나 초가을로 접어드는 ‘가을까치’ 김정수의 인생에 전설의 한국시리즈가 다시 찾아오기를 기원한다.

1980년대 프로야구를 대표했던 좌완투수인 ‘까치’ 김정수(전 해태)가 올 3월부터 친정팀 원정기록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사진은 17일 잠실 한화-두산전을 찾은 김정수 기록원의 모습(위)과 현역시절 마운드 위에서 힘차게 공을 던지던 모습(아래). 스포츠동아DB



김정수는?

▲생년월일=1962년 7월 24일
▲출신교=광주남초∼전남중∼진흥고∼연세대
▲프로선수 경력(좌투좌타)=1986년 해태∼2000년 SK∼2001년 한화∼2003년 SK
▲지도자 경력=2004년 한화 코치, 2006∼2007년 KIA 코치, 2010∼2011년 KIA 코치
▲프로통산 성적=600경기, 1394이닝, 1131탈삼진, 92승77패34세이브33홀드, 방어율 3.28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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