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비스 블랙클리, LA=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KIA 타이거즈와 재계약 실패-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마이너리그 계약-메이저리그 입성-중간 계투 활약-계약 2주 만에 방출-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입단-중간 계투 활약-메이저리그 선발 전격 발탁’
이보다 더 극적일 수는 없다. 지난해 KIA에서 뛰었던 외국인 투수 트레비스 블랙클리(30)의 최근 행보다.
올 시즌 KIA와 재계약에 실패한 트레비스는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시코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트리플 A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던 지난 5월 2일 무릎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투수 제레미 아펠트를 대신해 메이저리그로 콜업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트레비스는 메이저리그 입성 후 약 2주 만에 지명 할당됐다. 사실상의 방출이었다.
시즌 중 갑자기 무적 신세가 된 트레비스에게 손을 내민 것은 오클랜드. 극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잔류하게 된 트레비스는 중간 계투로 나선 3경기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자신의 손을 잡아준 오클랜드에 보답했다.
이에 오클랜드는 트레비스에게 더 큰 선물을 안겼다. 지난달 29일(이하 한국 시간) 트레비스를 팀의 제5선발로 전격 낙점한 것.
지난 9일 동아닷컴과의 미국 현지 인터뷰에서 트레비스는 “지난 몇 주간 멀미 날 정도의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라며 그 동안의 마음 고생을 전했다.
그는 또 자신의 전 소속팀이었던 KIA의 올시즌 성적과 함께 한국프로야구 근황에 대해 물어보는 등 한국 무대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클럽하우스에서 팀 동료들에게 한국야구에 대해 직접 설명해 주기도 하고 이대호의 일본 진출 성적을 물어보며 인터넷에서 그의 경기장면을 찾아 팀 동료들에게 소개하기도.
트레비스 블랙클리, LA=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메이저리그 잔류를 축하한다.
“(웃으며) 지난 몇 주간 마치 멀미 날 정도로 롤러코스터를 심하게 탄 기분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계속 던질 수 있게 되어 기쁘고 행복하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갑자기 방출되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앞이 깜깜할 정도로 암담했다.”
-오클랜드 입단 후 선발 투수로 발탁됐다. 시즌 내 계속 선발로 뛰게 되나?
“그렇다. 코칭스태프가 큰 이변이 없는 한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 팀에서 믿고 선발이라는 중책을 맡겨줘 고맙고 거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승패를 떠나 가급적 많은 이닝을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되겠다.”
-선발로 나선 지난 2경기에서 투구수가 많지는 않았다.
“코칭스태프가 내 몸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했다. 첫 경기에서 약 70여 개를 던졌고 두 번째는 90개 정도를 던졌다. 내일은 100개 정도를 던질 계획이다.”
-한국에서 당신의 인기가 여전하다.
“정말인가? 늘 한국 팬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야구를 사랑하는 그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그립다. 지난 번 동아닷컴과의 인터뷰 기사가 나간 후 SNS를 통해 한국 팬들로부터 많은 메시지를 받았다.”
-한국에서 뛰었을 때 상대팀 선수들과 여러 번 갈등이 있었고 그로 인해 벤치클리어링도 유발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로 다시 돌아온 후에는 마찰이 없다.
“(웃으며)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니 아무래도 혈기가 줄어들고 그만큼 철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투수가 마운드에서 이성을 잃으면 결국 자기 손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들도 야구를 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이제 7세인데 야구를 아주 좋아한다. 특히 공격(스윙)하는 걸 좋아한다. 아들한테 야구를 가르쳐 주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 아쉽다. 시즌이 끝나면 많이 가르쳐 주고 싶다.”
-아들은 야구를 잘하나?
“이제 막 야구를 시작해 아직은 실력을 논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야구에 대한 이론도 잘 모른다. (웃으며) 내가 투수인데 ‘아빠는 왜 타격을 안 하냐고?’ 물을 정도니 말이다.”
-당신의 옛 팀 동료인 윤석민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한국 투수 중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만한 선수를 꼽으라면?
“(단호하게) 세 명이다. 윤석민, 류현진 그리고 오승환이다. 이 3명은 미국에 와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윤석민은 나와 같은 팀이어서 가까이 지켜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그를 잘 안다. 구종도 다양하고 제구력도 일품이다. 메이저리그에 온다면 분명, 좋은 성적을 낼 것이다.
류현진은 체격 조건도 좋고 투구폼이나 스타일이 완전 미국식이다. 류현진을 보고 있노라면 양키스의 C.C. 사바시아가 연상될 정도로 배짱도 좋고 변화구도 일품이다.
오승환은 구속도 좋고 투구폼이 매우 특이하다. 내 기억으론 그가 92~95마일 정도의 직구를 던지는 걸로 아는데 그 정도 구속에다 오승환의 특이한 투구폼이라면 미국에서도 통할 가능성이 높다. 메이저리그에는 오승환처럼 투구시 발을 두 번 끌고 나오는 투수가 없기 때문에 타자들이 생소해서 초창기엔 오승환을 공략하기 힘들 것이다.”
트레비스 블랙클리, LA=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윤석민이 워낙 훌륭한 투수라 크게 조언할 것은 없다. 다만 미국 진출 시 어떤 팀을 선택하느냐는 분명히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나도 한국에서 그랬지만 외국인 투수는 성적에 대한 부담이 크다. 외국 진출 첫 해에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윤석민이 미국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투수에게 유리한 구장을 사용하는 팀이나 애틀랜타처럼 한국과 기후 조건이 비슷한 지역에 있는 팀을 고르는 것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텍사스나 양키스처럼 팀 공격력도 고려해야 한다.”
-다른 조언은 없나?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실투를 줄여야 한다. 한국에서는 가끔 투수들이 실투를 해도 장타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지만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절대 실투를 놓치지 않는다. 내 기억으론 윤석민보다 류현진이 더 실투가 많았던 것 같은데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반드시 실투를 줄여야 한다.”
LA | 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