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의 기습번트가 내야안타가 됐다면 팬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삼성 정형식은 26일 대구 KIA전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 중이던 윤석민을 상대로 8회말 2사후 기습번트를 시도했다. 0-1로 뒤지고 있던 상황. 불문율을 어긴 것일까, 아니면 승리를 위한 최선이었을까. 스포츠동아DB
윤석민 상대 기습번트에 에티켓 논란
정형식 “1-0 상황, 승리 위한 최선”
류감독 “정답 있나? 아웃돼서 다행”
삼성 정형식(21)이 26일 대구 KIA전에서 노히트노런 행진 중이던 투수 윤석민을 상대로 8회말 2사 후 기습번트를 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기습번트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퍼펙트게임이나 노히트노런이 진행 중일 때 기습번트를 대지 않는다’는 야구의 불문율을 어겼다는 지적이다.
○벤 데이비스와 타바레스의 기습번트
2000년 9월 16일 수원구장 해태전에서 현대 선발 김수경은 9회초 1사까지 노히트노런을 이어갔다. 그러나 해태 외국인타자 지저스 타바레스가 투수 옆을 지나 2루수 염경엽 앞으로 굴러가는 기습번트로 첫 안타를 만들었다. 당시 스코어는 11-0. 타바레스는 1994∼1998년 5년간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228경기를 뛴 선수였다. 당시 “야구 에티켓도 모르는 걸 보니 메이저리그가 아닌 이태원 출신 가짜 용병”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2001년 5월 29일(한국시간) 퀄컴스타디움. 애리조나 선발 커트 실링은 샌디에이고전에서 8회말 1사까지 퍼펙트게임을 진행했다. 0-2로 뒤진 가운데 샌디에이고 포수 벤 데이비스는 기습번트로 실링의 키를 넘기는 내야안타를 만들었다. 실링은 당시 3-1 완투승을 거둔 뒤 “무슨 사고방식인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불문율이 우선인가? 승리가 우선인가?
타바레스는 승부가 이미 기운 상황에서 대기록 하나를 깨기 위한 기습번트를 댔기 때문에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데이비스와 정형식의 기습번트 상황은 논란이 일 수 있는 상황이다. 스코어가 각각 2-0과 1-0이었기 때문이다. 데이비스는 “살얼음판 승부였다. 내가 출루해 다음타자 버바 트래멀이 큰 것 한방을 쳐주면 동점이라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정형식은 27일 사직 롯데전을 앞두고 “승부만을 위한 번트였다. 1-0에서 상대의 대기록부터 생각해 줘야하는 것인지, 우리팀 승리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논란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과거에 우리가 야구를 배울 때는 불문율 같은 게 없었다”며 “어제 그 상황이면 어떤 게 정답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최근 메이저리그의 영향으로 국내에도 그런 문화들이 들어오는 과도기에 있다. 어제 형식이가 번트를 대는 순간에 ‘만약 안타가 되면 논란이 되겠다’ 싶었다. 결과적으로 아웃돼 차라리 잘 됐다”고 말했다.
만약 시즌 최종전을 이겨야 우승이 결정되는 상황이라고 가정하면, 26일의 정형식과 같은 번트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승을 위한 기습번트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불문율을 지키기 위해 기습번트는 생각하지도 않았어야 할까. ‘불문율’은 말 그대로 규칙이 아닌 에티켓의 문제다. 그래서 정확한 답이 없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사직|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