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희 서른 넷에 결혼도 뒷전 “야구가 내 애인”

입력 2012-11-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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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볼 국가대표 경력의 유경희(고양 레이커스)는 여자야구에서도 ‘군계일학’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에 나선 유경희가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익산|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고양 레이커스 ‘만능에이스’ 유경희

투타는 물론 코치까지 완벽…팀 안방마님
CMS전 2회초 만루 싹쓸이로 승리 이끌어

13년 소프트볼 그만두고 야구재미 푹빠져
엄마의 성화도 “야구가 재밌다”로 일단락


18일 전북 익산 국가대표야구훈련장은 쌀쌀했지만 2012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 패자 결승에 임하는 고양 레이커스와 서울 CMS 선수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이기면 최종 결승에 올라가는 일전이기에 선수들은 끝까지 치열했다.

레이커스는 1회초 3점을 냈으나 1회말 곧장 1점을 허용했다. 2회초 반격에서 볼넷 3개로 만루 찬스를 얻었다. 3번 조정화의 중전적시타로 1점을 보태고, 다시 만루. 이어 타석에 등장한 4번 유경희(34)는 바뀐 투수 김주현의 초구를 받아쳐 좌중간을 가르는 대형 타구를 만들어냈다. 여자야구에서 좀처럼 나오기 힘든 큰 타구에 레이커스 주자들은 신나게 뛰어 모두 홈으로 들어왔다. 유경희도 홈으로 들어와 순식간에 4점이 났다. 기록상 중계 에러를 줘 ‘인사이드 파크 만루홈런’은 아니었지만 그랜드슬램이나 마찬가지였다. 유경희는 2회말 1사부터는 구원투수로 나섰다. 3.2이닝 7실점(5자책점)했지만 탈삼진 4개를 솎아내며 19-11, 5회 콜드게임을 이끌어냈다. 유경희의 게임이었다. 한마디로 클래스가 달랐다.


○한국여자야구의 만능선수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 참가팀은 총 28개에 이른다. 그러나 그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비밀리에’라는 종갓집으로 수렴된다. 실제 야구선수 출신 안향미(현재 탈퇴)의 주도로 만들어진 비밀리에 출신 선수들이 다양한 분파를 이뤄 새로 야구하고 싶은 여성들을 규합해 세를 불린 것이다. 현재 여자야구의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대부분 비밀리에 출신이고, 유경희도 그렇다.

유경희는 레이커스의 에이스이자 유격수이자 포수이자 4번타자이자 코치에 해당하는 핵심전력이다. 그녀는 CMS전을 앞두고 인터뷰하던 도중 “훈련을 해야 된다”며 필드로 나갔다. 알고 보니 자기 훈련이 아니라 동료들의 훈련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유경희는 손수 뜬공을 쳐 줬는데 여자야구에선 이런 훈련을 시킬 수 있는 선수도 그리 흔치 않다.

레이커스의 확실한 에이스이지만, CMS전에는 선발로 나가지 않고 마무리로 대기했다. 그러나 언제나 가장 많은 이닝을 던져야 할 사람이 자기란 것은 알고 있다. 바로 전날 열린 일본과의 한·일 올스타전 등판을 굳이 마다한 이유도 18일 패자 결승전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소프트볼에서 야구로, “재밌어서”

유경희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로 고1 때서야 뜻을 이뤘다. 반장까지 했지만 소프트볼이 더 좋았다. 소프트볼로 대학까지 진학했고, 국가대표도 해봤다. 졸업하고 입단할 실업팀이 사라져 2년간 방황도 했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2007년 경북체육회가 생겨 다시 소프트볼과 연을 이어갔다.

13년간 해왔던 소프트볼은 2010년 접었다. 그 대신 두 가지 재미를 얻었다. 하나는 신정중학교에 소프트볼 코치로 들어가 아이들 가르치는 재미를 익혔다. 또 하나는 소프트볼 대신 야구하는 재미를 알았다. 그때 비밀리에에 들어갔고, 올해 초 레이커스 창단의 산파 역할을 해 지금에 이르렀다.

1경기에 130구를 던진 적도 있다. 직구, 슬라이더 외에 체인지업을 배우려고 주성로 감독(한국여자야구연맹 경기이사·전 남자야구 국가대표 감독)을 쫓아다닌다. 야구하는 재미에 결혼도 뒤로 미뤘다. 유경희는 “집에서 엄마는 ‘밥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고 하지만 나는 재밌다”고 짧지만 분명하게 말한다. 그녀에게 야구는 종교이자 애인 같았다.

익산|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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