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록의 희생양이 됐던 박찬호. 동아일보DB
지난 1999년 4월 23(현지시각)일 미국 LA에 위치한 다저 스타디움에서는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다시는 나오지 않을 기이한 장면이 연출됐다.
한명의 타자가 한 이닝에 한명의 투수에게 두개의 만루 홈런을 때려낸 것. 이른바 ‘한만두’라 불리는 사건.
이는 이번 시즌 한국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를 마지막으로 선수 은퇴를 선언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에게 벌어진 불운이었다.
한국 야구팬에게는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은 이날의 사건을 미국 현지에서는 아직 잊지 않고 있다.
미국의 하드볼 타임즈는 31일(한국시각) 페르난도 타티스가 박찬호에게 한 이닝 두개의 만루홈런을 때려낸지 5000일이 되는 날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 매체는 ‘타티스는 지금으로부터 5000일 전 그의 선수 생활 동안 가장 훌륭한 날을 맞이했다’고 전했다.
당시의 상황은 이랬다. LA가 2-0으로 리드한 상황에서 맞은 3회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공격.
박찬호는 단타 2개와 몸에 맞는 공으로 무사만루의 위기를 자초했고, 4번 타자 타티스에게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만루홈런을 얻어맞았다.
스코어는 단숨에 2-4로 역전됐고, 박찬호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원아웃을 잡은 뒤 또다시 1점 홈런을 내준 것.
연속된 홈런으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박찬호는 연속 볼넷과 야수 선택으로 또다시 무사만루의 위기를 내줬다.
이어 1루수의 송구 에러가 터져 나왔고, 에드가 렌테리아에게 적시타를 얻어맞아 스코어는 2-7까지 벌어졌다.
비록 당대의 홈런왕 마크 맥과이어를 외야 플라이로 돌려세우며 두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았지만, 여전히 2사 만루의 위기였고 타석에는 전 타석 만루홈런의 주인공 타티스가 들어섰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이미 투수교체가 됐어야 했고, 적어도 또다시 타티스가 만루의 위기에서 타석에 들어섰을 때 구원 투수를 올렸어야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당시 LA의 감독이었던 데이비 존슨은 구원 투수를 올리지 않았고, 박찬호는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타티스가 3회의 두 번째 타석에서도 만루홈런을 때려낸 것.
타티스는 이날 경기에서 5타수 2안타 2홈런 8타점 2득점을 기록했다. 안타, 홈런, 타점, 득점 모두 오직 박찬호에게만 뽑아낸 것.
존슨 감독은 박찬호가 두 번째 만루홈런을 얻어맞은 후에야 카를로스 페레즈로 마운드를 교체했다.
이날 박찬호의 기록은 2 2/3이닝 8피안타 3피홈런 11실점. 이닝 중반에 실책이 나온 덕분에 박찬호의 자책점은 11점이 아닌 6점으로 기록됐지만 치욕을 씻을 수는 없었다.
대기록의 희생양이 된 박찬호는 이날 경기 이후 한동안 이른바 ‘한만두’의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한편, 이 매체는 박찬호와 타티스간에 벌어진 사건 외에도 이치로가 올스타전에서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때려낸지 2000일이 됐다는 내용 등을 덧붙였다.
동아닷컴 조성운 기자 madduxl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