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대표 정몽규 프로축구연맹 총재(왼쪽)-야권 대표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 스포츠동아DB
‘축구대통령’으로 불리는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전이 뜨겁다. 여권의 정몽규(51) 프로축구연맹 총재가 7일 출마 기자회견을 했고, 9일에는 야권의 대표 격인 허승표(67) 피플웍스 회장이 출마를 공식 선언할 예정이다. 차기 회장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28일 협회 대의원총회에서 열리는 선거에서 대의원 24명 중 과반수인 13명 이상에게 지지를 얻어야 한다. 정 총재와 허 회장의 ‘양 강’ 구도인 가운데 어느 때보다 치열한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스포츠동아는 축구 관계자 30명을 대상으로 차기 회장에 대한 긴급설문을 실시했다. ▲차기 회장이 갖춰야 할 덕목 ▲차기 회장이 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할 정책 ▲조중연 현 회장에 대한 평가 등을 물었다. 설문은 K리그 사(단)장 및 실무자와 축구인, 미디어 관계자를 대상으로 했고, 특히 한국축구의 풀뿌리에 해당하는 초·중·고·대학의 아마추어 감독들의 의견을 십분 반영했다.
14명 “조중연 회장 재임기간 축구계 분열…대통합 이끌 후보 절실”
11명 “원칙에 근거한 투명행정”…일부는 “정치적 중립” 목소리도
“유소년 육성·현직 지도자 처우개선”…53%가 최우선 정책에 꼽아
조중연 회장 재임기간 축구계는 갈기갈기 찢어졌다. 조 회장은 2009년 1월 당선 인사말에서 “저를 지지하셨던 분이나 반대하셨던 분 모두를 끌어안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이다”고 약속했다. 말뿐이었다. 조 회장은 축구계 전체를 아우를 의지도 없었고, 능력도 부족했다. 민심이 바로미터다. 축구 관계자들은 차기 회장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갈라진 축구계를 화합으로 이끌 통합의 리더십’을 꼽았다. 복수 응답이 가능한 가운데 14표가 나왔다. 차기 회장이 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할 정책으로는 ‘유소년 육성 및 현직 지도자 처우 개선’(16표), ‘한국축구 외교력 강화’(9표)가 꼽혔다.
○갈라진 축구계 통합해야
이번 선거는 1∼2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누가 이기든 ‘절반의 승리’인 것이다. 50%에 가까운 반대 세력을 아우를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만 한국축구가 산다. 협회와 산하 연맹, A대표팀과 각급 대표팀 그리고 협회 내부 조직 사이에 존재하는 벽도 허물어야만 한다. A씨는 “협회는 산하단체도 많고 여러 기관과 이해관계도 많이 얽혀 있다. 협회장이라면 이 모두를 안고 갈 수 있는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통합의 리더십을 위해서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차기 회장의 덕목 중 두 번째로 많은 응답을 얻은 것이 ‘원칙에 근거한 투명한 행정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축구 관계자들이 ‘통합’과 ‘원칙’에 목말라 있다는 것은 조중연 집행부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지금 축구계가 분열돼 있고 무원칙 행정이 만연했다는 방증이다.
조 회장은 반대파를 가차 없이 내쳤다. 야권 성향의 조광래 전 A대표팀 감독을 기술위원회 한 번 열지 않고 경질해 비난의 중심에 섰다. 조 회장은 “반대파인 조광래를 선임한 것도 통합의 일환이다”고 주장하지만 어불성설이다. 진짜 포용할 의지가 있었다면 끝까지 믿었어야 했고, 경질하더라도 절차를 지켰어야 했다.
절차와 원칙도 수시로 무시됐다. 전북 공격수 에닝요의 특별귀화를 추진하며 제대로 된 여론수렴도 없었던 일, 에닝요의 귀화 요청을 체육회가 거부하자 공개적으로 맞서려 한 일, 내부 비리 직원을 거액의 위로금을 주고 내보낸 뒤 법정 소송에서 패해 망신을 산 일 등 하나하나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B씨는 “개인적으로 조 회장을 만날 기회가 2∼3번 있었다. 각 부서별 보고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 구조더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C씨는 “조 회장 인맥 등을 두고 이런 저런 말이 많지 않나. 일할 사람은 널렸다. 그런 사람을 쓰지 않는 게 문제다”고 아쉬워했다.
조 회장의 최측근이었던 현 부회장 중 1명조차 최근 사석에서 “조 회장은 정말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누구와도 상의를 안 했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유소년 육성, 외교력 강화
차기 회장이 우선 실시해야 할 정책으로 상당수 아마추어 지도자들이 ‘유소년 육성과 지도자 처우 개선‘을 뽑았다.
협회와 현장의 괴리감이 눈에 띈다. D씨는 “초중고 리그 현장에 가 보면 여러 문제점이 많다. 그런데 실행 5년이 넘도록 조 회장이 현장 목소리를 들으려 했나. 협회의 초중고 리그 평가는 모두 자화자찬 식의 긍정적 내용 밖에 없다”고 쓴 소리를 했다. 현 집행부는 초중고 리그 정착과 활성화를 틈 날 때마다 치적으로 내세웠다. 과연 현장 분위기를 제대로 반영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차기 집행부가 꼭 염두에 둬야 할 대목이다.
외교력 강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응답자도 많았다. 런던올림픽 후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협회 행정이 미숙함을 드러낸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K리그 관계자들 사이에서 외교력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E씨는 “한국축구 실력은 알아주지만 외교력은 빵점이다”고 비판했다. K리그 클럽들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등 국제 대회에서 이런 저런 불합리함을 많이 느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F씨는 “차기 회장은 본인도 외교 감각이 뛰어나야 하지만 협회 내에서 인력 발굴과 육성, 지원에 청사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교인력 육성과 지원은 꾸준한 투자와 노력이 담보돼야 한다. 현재 협회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마스터과정(석사)을 이수한 직원이 3명 있다. 이 중 협회가 직원을 대상으로 자체 선발해 보낸 인원은 1명뿐이다. 그것도 첫 회 시작과 동시에 종말을 고했다. 일회성에 그칠 게 아니라 지속성이 필요하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