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무명시절을 딛고 두산의 중심 투수로 탈바꿈한 노경은. 그는 ‘열심히 던졌던 투수’로 팬들에게 기억될 수 있도록 등판 때마다 혼신의 투구를 펼쳐왔다. 스포츠동아DB
마무리처럼 공하나하나 전력투구
아직 쉬어갈 레벨은 아니잖아요
WBC 일본·미국전서 내 공 테스트
첫 억대연봉…이젠 몸값 제대로 해야죠
무려 10년이다. 안개가 희뿌옇게 드리워져 좀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몇 번이고 야구를 포기하려 했다. 그러나 끝까지 유니폼을 벗지 않았다. 그를 지탱한 것은 ‘인생에 한 번의 기회는 온다’는 실낱같은 믿음과 항상 “우리 아들이 최고”라며 애지중지해온 부모님이었다. 2012년 선발투수로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2013년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로 태극마크까지 달게 된 노경은(29·두산)이 스포츠동아 트위터 인터뷰를 통해 10년의 무명시절을 딛고 새 야구인생을 열게 된 심경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일본 미야자키 스프링캠프에서 빡빡한 훈련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기꺼이 장시간의 인터뷰에 임했다.
-억대연봉자 반열에 올랐는데 소감이 어떤가요?(Happy_anding_)
“돈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기분이 좋은 게 아니더라고요. 계약하고 나니까 책임감이 더 느껴졌습니다. ‘받은 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라는 생각 때문에 어깨가 무겁네요.”
-지난 시즌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비결이 뭔가요.(@dbsguswls81)
“심적으로 안정된 게 가장 컸죠. 오랫동안 절 지도해주셨던 김진욱 감독님이 1군에서, 감독이라는 자리에서 저를 지켜봐주신 게 든든했거든요. 정명원 코치님도 ‘넌 된다. 내가 만들어줄게’라면서 항상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셨어요.”
-노경은 선수에게 김진욱 감독과 정명원 코치란?(@Happy_anding_32, @tripleu68)
“언젠가 ‘김진욱 감독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씀드린 적 있어요. 정명원 코치님은 제가 야구선수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엄청난 무기를 쥐어주신 분이고요.”
-지난해 갑자기 선발 등판한 경기(6월 6일 SK전) 때 느낌을 얘기해주세요.(@fdfd16)
“예전에는 기회가 오면 잘 하려고만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날은 ‘몇 이닝 몇 실점을 하자’가 아니라 마치 마무리투수처럼 이닝마다 1구, 1구 전력으로 던졌어요. 선발이 그렇게 던지면 안 되는데 당시에는 그만큼 간절했어요.”
-작년 시즌 크게 무너진 피칭이 없는 이유가 있을까요?(@fdfd16)
“선발등판을 할 때마다 긴장을 풀어본 적이 없어요. ‘지난 경기에서 잘 했으니까 이번 경기는 좀 쉬어가자’는 생각을 할 레벨이 아니잖아요. 맡은 경기는 무조건 전력으로 던지자는 생각뿐이었죠. 저에게는 한 경기, 한 경기가 값지고 소중했어요.”
-지난해 34이닝 무실점까지 기록하면서 엄청난 활약 보여주셨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경기는 언제였나요.(@dajung_0103)
“(기록이 34이닝에서 멈춘) 10월 2일 목동 넥센전이요. 솔직히 기록을 의식하진 않았어요. 서재응 선배님(45연속이닝 무실점)이 또 계셨잖아요. 그런데 워낙 주위에서 기대를 많이 해서 그날 힘이 많이 들어갔던 것 같아요.”
-지난해 완봉승을 많이 했는데 올해 퍼펙트게임, 노히트노런에 욕심 있나요?(@don8097)
“절대 없습니다. 1승 하기도 힘든데요. 매년 13승, 14승을 올리는 투수가 한 번 긁히는 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전 아니에요. 산악인들도 세계 3대산(에베레스트·K2·칸첸중가)은 하늘이 허락해줘야 오를 수 있다고 하잖아요. 퍼펙트게임이나 노히트노런 역시 하늘이 허락해야 가능한 기록이라고 생각해요.”
-야구 입문하게 된 계기가 특이하다 들었어요.(@opallios21)
“원래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부에 입단하려고 했는데 가기 전에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간 거예요. 그때 마침 원장님 아들이 야구를 하고 있었고 절 보시더니 ‘그 좋은 덩치 가지고 왜 야구를 안 하느냐’고 야구부를 소개시켜줘서 테스트를 받았어요. 그날 바로 유니폼 맞췄죠.”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것에 비해 잘 풀리질 않아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럴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겨냈나요?(@hanbyol0824)
“인생에 기회가 한 번은 온다. 무조건 온다고 믿고 버텼죠. 사실 힘들어서 여러 번 포기할 뻔했어요. 방황도 많이 하고. 그런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 얼굴이 떠오르더라고요. 저희 부모님은 저를 굉장히 크게 생각하시거든요. 어머니가 집안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을 때도 아들이 밖에 나가서 남들 앞에서 고개 숙이지 말라고 좋은 옷 입혀주시고, 좋은 운동화 사주시고 그랬어요. 항상 ‘우리 아들이 최고’라고 해주시고. ‘아들 믿고 기다리라’고 말하다가 그것도 10년 지나니 그 말도 안 나왔는데, 마음속으로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 덕분에 제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야구를 포기하려하는 선수들에게 응원의 말 부탁해요.(@Happy_anding_32)
“4∼5년 하고 힘들다고 포기하려고 하는 후배들에게 농담으로 ‘이제 6년차면 4년 남았네’라고 해요. 장난이지만, 기회는 꼭 한 번 오니까 기다리는 의미죠. 그게 몇 년 뒤가 될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건 기회가 왔을 때 본인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산 투수진 중에 ‘이 선수가 열심히 하니 언젠가는 꼭 빛을 볼 것 같다’ 하는 선수 있나요?(@winpast)
“지난해 (김)강률이이한테 ‘2013년은 너다. 준비해라’라고 항상 말했어요. (서)동환이도 그렇고요. 구위가 워낙 좋으니까 감만 잡으면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둘 중에 한 명은 터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릴 적 어떤 선수를 보며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나요?(@7sh1ri)
“박찬호 선배님이요. 어릴 때부터 선배님이 새겨진 열쇠고리, 스티커 다 모을 정도로 팬이에요. 중학교 1학년 때 선배님 선발등판 경기 보려고 수업도 땡땡이 치고 야구부 숙소에 가서 몰래 보고 그랬죠. 캠프에서 선배님을 직접 만났을 때 정말 꿈만 같았어요. 김태희를 직접 봐도 그렇게 떨리지 않았을 거예요. 질문이요? 엄청 많이 했죠. 하하. 선배님이 운동화와 티셔츠도 주시고 밥도 사주시고. 지금도 가끔 카톡 보내주세요. 지난해 선배님 공 던지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메이저리그에서 무려 100승을 올린 투수잖아요. 다시 그런 선수가 한국에서 나올까요. 정말 존경스러워요.”
-WBC 국가대표로 뽑혀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이번 대회에서 이것만은 꼭 하겠다 다짐한 게 있나요.(@shuazone)
“꼭 4강에 들고 싶고요. 제가 제 힘으로 한 게임을 책임져보고 싶어요.”
-WBC에 나가서 가장 상대하고 싶은 나라와 상대 선수는 누구인가요.
“선수는 없고 일본전에서 한 번 던지고 싶어요. 4강을 간 뒤에는 미국도요. 일본과 미국 선수들을 상대로 제 공이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해보고 싶어요.”
-야구를 하면서 세우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chaeRi0609)
“첫 번째는 야구 오래하는 선수요. 성적이 안 좋으면서 질질 끄는 게 아니라 좋은 성적을 내면서 오래 하고 싶은 게 제 꿈이에요. 두 번째는 나중에 야구를 그만두더라도 팬들이 두산 노경은 하면 ‘경기에서 잘하는 선수보다 정말 열심히 던졌던 투수’라고 기억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30년 뒤 나의 모습은?
“음…. 골프 치는 걸 좋아해서 골프 치면서 친구들과 여유롭게 살고 있을 것 같아요.”
두산 노경은?
▲생년월일=1984년 3월 11일
▲키·몸무게=186cm·85kg(우투우타)
▲출신교=화곡초∼성남중∼성남고∼대불대
▲프로 입단=2003신인드래프트 두산 1차 지명·입단
▲2012년 성적=42경기 12승6패7홀드 방어율 2.53(146이닝 133탈삼진)
▲2013년 연봉=1억6000만원
정리|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hong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