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사커에세이] “같이 살고 같이 죽자”…홍명보 2년계약의 이유

입력 2013-07-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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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 스포츠동아DB

지난 시즌 FC서울 최용수 감독은 K리그 최초로 선수-코치-감독으로 우승을 맛봤고, 통산 신인상-최우수선수상(MVP)-감독상을 수상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최고의 한해였다. 그런데 구단과 재계약 협상에서 뜻밖의 제안을 했다. 계약기간 1년을 주장한 것이다. 대개 우승 감독은 장기 계약을 노린다. 우승에 대한 보상 차원은 물론이고 팀을 리빌딩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하지만 최 감독은 반대로 갔다. 오히려 구단이 설득했다. 결국 구단 뜻대로 연장 옵션 없는 3년 계약을 했지만 당시 최 감독의 주장은 신선했다. 욕심 좀 부려도 된다고 하자 최 감독은 “장기 계약을 하면 내 자신이 느슨해진다. 1년 단위의 계약을 해야만 승부사 기질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절실함이 있어야 성취가 가능하고, 벼랑 끝에 있어야 혼신을 다한다는 논리였다.

감독 입장에서 계약기간은 민감하다. 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약기간도 성적을 피해갈 수는 없다. 아무리 장기계약을 해도 곤두박질치는 성적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결국 자진사퇴를 가장한 경질 수준을 밟는 일이 다반사다. 그래서 잠시도 방심하면 안 된다.

한국대표팀 사령탑의 경우 대부분 단명했다. 아직 단 한번도 4년을 채우면서 월드컵을 준비한 사령탑이 없다. 2002한일월드컵 거스 히딩크 이후 홍명보 감독이 새 사령탑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모두 7명이 거쳐 갔다. 코엘류(2003.2∼2004.4) 본프레레(2004.6∼2005.8) 아드보카트(2005.10∼2006.6) 베어벡(2006.7∼2007.8) 허정무(2007.12∼2010.6) 조광래(2010.7∼2011.12) 최강희(2011.12∼2013.6) 등이다. 모두 1년 남짓한 임기다.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끈 허 감독이 2년7개월로 최장수를 누렸다. 대개가 경질, 자진사퇴 등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아 아름다운 이별과는 거리가 멀었다.

홍명보 감독의 취임을 앞두고 내가 관심을 가진 건 계약기간이었다. 홍 감독의 계약 기간에 대한 소문은 많았다. 1+4년 계약설이 파다했다. 한국축구의 장기 발전을 위해서는 2018러시아월드컵까지 이어져야한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그런데 결과는 2년이었다. 내년 브라질월드컵과 2015호주아시안컵 등을 통해 검증받겠다고 한다. 공짜로 자리보존을 하지 않겠다는 게 홍 감독의 의지였다. 협회가 오히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다. 아마 소문처럼 5년이었을 것이다. 홍 감독은 “2018년까지 임기가 보장되면 스스로 자세가 느슨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나에게도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간절해지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채찍질을 가하고자 2년간 계약하자고 내가 제안했다”고 밝혔다.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감독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것은 물론이고 선수들을 향해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2년간 같이 죽고 같이 살겠다는 선수만 데려가겠다는 게 그의 속마음일 게다. 계약 기간에 담긴 진짜 의미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홍 감독은 2년 동안 지도력을 인정받으면 2018년까지 갈 수 있다. 함께 한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최용수와 홍명보의 사례를 보면 계약 기간의 길고 짧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훌륭한 팀을 만드는 건 감독의 승부사 기질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이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앞장서는데 어떤 선수가 따라오지 않겠는가.

스포츠 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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