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김경기 2군 타격코치는 ‘인천의 적자’로 불린다. 인천고 출신으로 태평양에서 4번타자를 맡기도 했다. ‘인천야구의 대부’ 김진영 전 삼미 감독의 아들인 그는 “부자 야구인이라서 좋은 점도 있었지만, 그로 인한 애환도 상당했다”고 말했다. 스포츠동아DB
다른 선수 학부모 눈총과 지도자 무관심 우려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내 아들은 야구 안시켜”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는 말은 야구에서도 유효하다. 프로야구선수 가운데는 아버지의 업을 물려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LG의 돌풍을 이끌고 있는 김용의(28), 정의윤(27), 문선재(23)는 모두 ‘야구인 2세’다.
김용의의 아버지는 실업야구 한일은행 출신의 김문수(54)씨다. 정의윤의 아버지는 정인교(56) 롯데 코치다. 문선재의 아버지는 문성록(52) KIA 원정기록원. 넥센에서 대주자 요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유재신(26)도 피를 이어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1984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 유두열(57·당시 롯데)이다.
이외에도 박종훈(54·NC 육성이사)-윤(25·SK), 유승안(57·경찰청 감독)-원상(27·LG), 김성근(71·고양 원더스 감독)-정준(43·SBS ESPN 해설위원) 등이 대표적인 부자 야구인이다.
● 야구는 어떻게 대물림되나?
김진영(78·전 삼미·롯데 감독)-경기(45·SK 코치) 부자는 야구 대물림의 원조 격으로 꼽힌다. 인천고 출신의 김진영 전 감독은 인하대(1981∼1982년), 삼미(1983∼1985년)에서 지휘봉을 잡으며 ‘인천야구의 대부’로 불렸다. 김경기 코치 역시 인천고 출신으로, 1990년 태평양에 입단해 4번타자로 활약했다. 그에게는 ‘인천의 적자’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김 코치는 “2세 선수가 각 고교팀에 최소 한 명씩은 있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례까지 합치면 야구부자는 정말 많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2세들이 쉽게 야구를 접하기 때문이다. 집에는 최신 야구장비가 있고, 야구를 볼 기회도 많다. 김 코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초등학생이던 시절만 해도 글러브와 배트가 흔치 않았다. 동네 형들은 야구를 하기 위해 어린 김 코치를 불렀다. 야구장비 담당이었다. 그 대가로 우익수로 출전했다.
이렇게 야구를 시작하는 시기에는 조금이라도 야구에 익숙한 이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의 대물림 선수들은 또래에 비해 좋은 실력을 발휘한다. 자연스럽게 선수의 길로 접어든다.
● 부자 야구선수의 애환은?
그러나 시작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재능과 노력이 없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야구인 2세와 또래들의 실력차는 줄어든다. 남모를 애환도 이겨내야 한다. 2세들에게는 다른 선수·학부모와의 미묘한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다.
김경기 코치는 “학창시절 삼진을 먹고 들어오는데, 관중석에서 한 학부모가 ‘쟤는 아버지 덕에 야구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어린 마음에 큰 상처였다.
지도자와의 관계도 애매해지는 경우가 있다. 지나친 관심이 독이 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문제다. 일부 지도자는 ‘저 선수는 아버지가 진학 문제를 책임지겠지…’라고 생각하고 손을 놓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딛고 일어서야 프로의 문을 열 수 있다.
김 코치는 “처음에는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학업을 멀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야구를 시작할 정도였다. 고1 때 야구로 정확히 진로를 결정하기 전까지는 운동에 대해 말씀하시는 법도 없었다. 감독의 말을 무조건 따르라고만 하셨다”고 밝혔다. 아버지에게는 그것이 아들을 위한 ‘숨은 노력’이었다. 아들이 처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업’이 3대째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김 코치의 대학생 아들은 현재 야구와는 무관한 공부를 하고 있다. 김 코치는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를 알기 때문에 아들이 야구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집에 야구장비나, 그 흔한 야구 관련 사진 하나도 갖다 두지 않았다”며 웃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