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띠 해, 서울의 말과 관련된 지명 찾아가볼까

입력 2014-01-02 13: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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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은 말띠 해다.

오래전부터 말은 짐을 옮기거나 이동의 수단으로 인간에게 중요한 동물이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말과 관련된 지명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지명에 역(驛)이 들어가는 서울의 역삼동과 역촌동. 전국으로 소식이나 명령 등을 보내는 ‘파발마’와 관련이 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친숙한 말죽거리는 현재 서울 서초구 양재역 사거리 일대다. ‘말죽거리’란 이르¤ㄴ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 도성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말죽거리가 마지막 주막이어서 많은 여행자들이 여장을 풀고 먼 길을 걸어온 말에게 죽을 끓여 먹였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또한 1624년 ‘이괄의 난’ 때 인조 임금 일행이 남도로 피난하면서 허기와 갈증에 지쳐 이 일대에서 급히 쑤어온 팥죽을 말 위에서 먹고 부랴부랴 과천으로 떠났다는 고사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지금은 ‘맛집 골목’으로 유명한 서울 종로구 피맛골도 말과 관련된 지명이다. 피맛골은 조선시대 서민들이 고관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뜻의 피마(避馬)에서 유래했다. 서민들이 많이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주막과 식당이 생겨나서 오늘에 이르렀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馬場洞)은 조선시대 양마장(養馬場)이 있었던 곳에서 지명이 붙여졌다. 양마장은 ‘파발마’를 기르고 관리하는 곳으로 이 일대는 근세까지만 해도 넓은 풀밭이 있었다. 말들은 주로 제주도에서 한양으로 올라왔는데 암말은 지금의 광진구 자양동으로 보내졌고 숫말은 마장동의 말 목장에서 길렀다고 한다.

서울 뚝섬 일대역시 동교(東郊), 전교(箭郊) 등으로 불리며 말과 관련된 여러 업무가 행해졌다. 말을 사육하는 것 외에도 기마병들의 훈련장으로 쓰였고, 임금이 가끔씩 사냥을 즐기던 사냥터이며 말과 관련된 여러 행사의 무대이기도 했다.

2009년 4월 20일 화양동으로 으름을 바꾼 모진동은 조선시대 이 일대에 양마장이 있었다. 방목된 말이 실족하여 지금의 건국대학교 정문 근처에 있던 수렁에 빠져 죽게 됐는데, 이곳 여인들이 수렁 위에 널빤지를 띄워 놓고 들어가 말을 건져내어 그 고기를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이를 본 인근 주민들이 이 동네의 여인들을 보고 ‘모진 여인’이라 부르고, 모진 여인들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모진동’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스포츠동아 김재학 기자 ajapt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ajap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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