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남아공월드컵 당시 코치였던 박태하 스포츠동아해설위원(왼쪽)은 2008년부터 2010년 여름까지 대표팀의 훈련 내용과 선수들의 컨디션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고 있었다. 한국축구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의 숨은 비결이다. 스포츠동아DB
개인 능력치·신체상황 체계적 데이터 구축
날짜별로 자료 정리…돌발적인 상황에 대비
5월 중순서 6월까지 47일간의 기록 한눈에
2014브라질월드컵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국민들의 시선은 대표팀 홍명보호를 향한다. 쉴 틈이 없다. 바쁘게 움직여야한다. 100일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4년 전 남아공 대회 때 대표팀 코치를 맡았던 박태하 스포츠동아 해설위원은 2008년부터 2010년 여름까지의 긴 여정을 자신의 노트북 속에 담아뒀다. 거기에는 대표팀이 어떤 훈련을 했는지, 또 어떻게 선수들의 컨디션을 끌어올렸는지가 낱낱이 적혀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선수가 어느 시기에 대표팀을 거쳤고,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기록되어있다. 이런 노력들이 한국축구 사성 첫 원정 16강이라는 성과물을 내는데 일조한 것이다. 박 위원은 지금도 생각날 때면 태극전사들의 모든 게 담긴 일지를 읽어보며 당시를 떠올린다. 과연 어떤 내용일까. 스포츠동아가 단독 입수한 박 위원의 남아공월드컵 훈련일지를 공개한다.
● 일지의 하이라이트는 47일 간의 기록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3승3무·10득점 3실점)때 허정무호는 50명의 선수를 기본으로 조금씩 엔트리를 바꿔갔다. 주 포메이션은 4-2-3-1. 지금의 홍명보호와 같다. 이 중 박지성 김남일 조원희 조용형 오범석 정성룡 등 6명이 붙박이었다. 아시아 최종예선(4승4무·12득점 4실점)은 4-4-2시스템으로 전환됐다. 고정 멤버들이 정해진 시점이자 기성용과 이청용이 확실한 멤버가 된 시기다. 허정무호는 월드컵 베이스캠프(남아공 루스텐버그)도 일찍 확정했다. 2009년 7월, 그해 11월, 이듬해 3월 원정 평가전을 소화했는데, 50명의 인력 풀(Pool)은 바뀌지 않았다.
핵심은 2010년 5월10일부터 6월26일까지 마지막 과정이다.
파주NFC에서 12일간(5.10∼22)을 보낸 뒤 일본 사이타마(5.22∼25), 오스트리아 노이슈티프트(5.25∼6.4), 남아공(6.5∼26) 순으로 여정이 이어졌다. 파주훈련 중 에콰도르와의 국내 평가전이 있었지만 휴식과 기초 체력에 매진했고, 일본 원정을 통해 실전 적응력을 높였다. 노이슈티프트에서 고지대 적응과 체력 및 전술을 맞추며 개인 컨디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전일 휴식은 단 한 번(5.17)뿐이었고, 밸런스와 파워프로그램이 중심이 된 체력 훈련은 7차례 했다.
남아공월드컵 대표팀의 두 기둥이었던 박지성(위쪽)과 이영표의 쿠퍼테스트 결과. 박지성은 훈련 직후 심박수(HRwork) 151에서 휴식 후 45(HRrest)로 줄었고, 이영표는 163에서 154로 줄었다. 이영표의 회복 능력이 좋다는 걸 의미한다. 자료제공|박태하 해설위원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익숙해진 일명 ‘공포의 삑삑이(쿠퍼 테스트)’ 결과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혹독한 훈련으로 악명 높았던 레이몬드 베르하이옌 피지컬 코치와 마이클 쿠이퍼스 트레이너가 주관한 이 테스트는 2010년에만 3차례(1월, 3월, 5월)진행됐다. 노이슈티프트까지 동행한 26명(탈락자 3명 포함)의 결과가 정리됐는데, 이영표의 체력이 단연 최고에 가까웠다. 3월 영국 런던 훈련에서 가장 빠른 회복을 보였다. 훈련 직후 163회의 심박은 15초 뒤 144회로 줄었다. 변화의 폭이 클수록 회복 능력이 좋은 걸 의미하는데, A선수는 181회에서 179회로 떨어지는데 그쳐 대조를 이뤘다.
5월 이후에는 노이슈티프트에서 한 번(5.27) 시행했다. 주장 완장을 찼던 ‘산소탱크’ 박지성은 이날 처음이자 마지막 쿠퍼 테스트를 했지만 151회에서 145회로 회복력이 우수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개인별 평가’는 최고였다. ▲기술 ▲전술 ▲체력 ▲정신력 등으로 구분한 보고서에는 박지성에 대해 “가속이 붙었을 때 돌파가 좋고, 연계 동작을 위한 볼 터치가 좋다. 공중 볼 능력은 뛰어나지 않고(기술), 좌우 측면부터 중앙, 섀도 스트라이커 역할까지 소화 가능한 중심축이자 볼 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공간 창출 능력이 뛰어나다. 폭 넓은 움직임과 측면 침투보다는 순간 공간 침투가 위협적이다(전술). 파워와 체력(체력)을 겸비했고, 내성적이지만 팀 리더로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정신력)”고 적혀있다. 기타 사항으로는 허벅지 통증에 따른 벨라루스 평가전(5.30) 결장이 기술돼 있다.
당시에는 고지대 상황도 염두에 뒀다. 해발 1000m 고도의 노이슈티프트에서 운동 능력 평가도 병행됐는데, 패스 횟수(1∼4회)와 참가 인원을 달리한 미니게임을 통해 심박 변화와 전체 뜀 거리로 비교됐다. 여기서 김보경 김형일 염기훈 조용형 등이 가장 우수한 ‘고지대’ 맞춤형 선수로 판단됐다.
박 위원은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최대한 자세히 많은 사안들을 적어뒀다. 조금은 낯설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선수 관리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공부도 많이 했다. 대개 선수별, 날짜별로 자료를 정리했는데, 이는 돌발 상황 발생 때 선수 상태를 확인하고 적절히 대처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놨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