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LG는 전신이었던 MBC 청룡 시절부터 서울의 터줏대감이었다. 1982년 3월27일 열린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서 이종도(오른쪽)가 10회말 끝내기 만루홈런을 기록하며 MBC 청룡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2. LG의 간판 투수 김용수는 2차례 우승의 주역으로 치열한 자기관리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최고 투수가 됐다. 100승-200세이브를 달성하며 구단 최초의 영구결번자로 이름을 올렸다. 스포츠동아DB
MBC 청룡의 피 이어받은 혁신 구단
7. LG 트윈스
1990년 MBC 청룡 인수 첫 해부터 한국시리즈 우승
김재현 등 미남 선수들 활약으로 여성팬 야구장 불러
2000년대부터 암흑기…지난해 11년만에 PS 진출
LG 트윈스. 프로야구는 물론 한국 기업사에서 야구단의 이름으로 그룹 전체의 사명이 바뀐 곳은 LG그룹이 유일하다.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한 럭키금성 그룹은 팀 이름을 ‘럭키’와 ‘금성’의 첫 글자를 따 LG로 지었다. 모기업 사명을 그대로 팀으로 사용했던 것과는 다른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마스코트 역시 동물을 떠나 트윈스라는 절묘한 이름으로 완성됐다. ‘인간 존중’의 그룹 이념, 지금은 GS그룹으로 나뉘었지만 구씨 가문과 허씨 가문의 아름다운 동업이라는 모기업의 큰 자랑거리도 투영됐다.
1990년대 초반 LG는 프로야구의 주인공이었다. 성적은 물론 최고의 스타들을 배출했다.
팀 인수 첫해인 1990년 백인천 초대 감독의 강력한 카리스마에 정상흠, 김용수, 김기범, 김태원이 막강한 마운드를 구축하며 시즌 내내 선두 빙그레를 추격했다. 시즌 최종전에서 극적인 9회말 끝내기 승리로 페넌트레이스 1위에 올랐고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4전 전승으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1991년 백인천 감독이 전신 MBC와 맺은 계약 문제로 구단과 갈등을 빚으며 팀이 흔들렸고 6위로 추락했다. 그러나 시즌 후 새 사령탑으로 영입된 이광환 감독은 국내에 생소했던 자율야구를 꺼내들어 지금까지 LG의 상징과 같은 ‘신바람 야구’를 그라운드에 펼쳤다.
LG의 레전드로 꼽히는 선수들의 활약도 빛났다. 1993년 좌완 이상훈이 입단했고 1994년 ‘신인 3총사’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에 해태에서 한대화가 트레이드로 영입되며 막강한 전력을 구축한다. 한대화의 리더십으로 팀이 하나가 됐고 마운드에서는 이상훈, 김태원, 정삼흠이 모두 15승 이상을 기록하며 페넌트레이스 1위와 한국시리즈 4전 전승 우승이라는 완벽한 시즌을 만들었다.
특히 김재현, 서용빈, 유지현 등 잘 생긴 신인들의 활약은 팀뿐 아니라 리그 전체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그동안 남성 중심적이었던 야구장에 수많은 여성 팬들이 등장하며 리그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또한 강렬했던 첫 번째 전성기는 1995년 그룹 사명 변경으로 이어졌다.
럭키금성 그룹은 1995년 기업이미지와 CI를 바꾸며 LG그룹으로 이름을 바꿨다. 첨단전자산업이 주력인 그룹과 잘 생긴 스타들이 그라운드를 지배하는 세련된 이미지는 무엇보다 잘 어울렸다. 그러나 이후 LG는 2000년대 들어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많은 명감독을 영입하고 수십 억 원을 투자해 선수보강도 했지만 암흑기는 생각보다 길었다.
LG는 2012년 사령탑에 오른 김기태 감독의 리더십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며 2013년 드디어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2014년에는 경기도 이천시에 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2군 전용 훈련 경기장이 문을 연다. 2013년 비록 정상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선수단에 드리워있던 패배주의를 지웠고 젊은 선수들이 가을야구를 경험했다는 큰 자산을 얻었다. 무엇보다 가을이면 유독 더 쓸쓸했던 LG팬들에게 유광 점퍼를 다시 선물 했다는 것에 의미가 컸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