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피에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팀을 위한 열정과 팬서비스뿐”

입력 2014-05-01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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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의 외국인타자 펠릭스 피에는 제이 데이비스를 넘어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다고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4월 16일 광주 KIA전에서 선발투수 클레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마운드로 뛰어가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정 많고 승부욕 강한 선수다. 대전|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 한화 피에

농구하다 NBA 문 좁아 열 네살에 야구 전향
마이너리그서 한 단계씩 올라갈 때 행복느껴

한국 투수들 미국보다 변화구 제구력 뛰어나
외야서 마운드로 뛰어간 날은 좀 예민했던듯

도미니카 가족 그리워…내년 한국 초청 계획
팬들이 좋아하는 내 모습 그대로 최선 다할 것


펠릭스 피에(29)가 한화 유니폼을 입고 처음 대전구장에 섰을 때, 많은 팬들은 한국형 용병으로 유명했던 제이 데이비스를 떠올렸다. 데이비스는 1999년부터 2006년까지 7년간 한국에서 뛰면서 통산 타율 0.313, 167홈런, 108도루라는 기록을 남겼다. 당연히 역대 최고의 용병타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나 피에는 고개부터 흔든다. “나는 데이비스가 아닌, 그냥 나 자신으로 한국 팬들에게 기억되고 싶다”고 외친다. 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승부욕이 강하다.

한국 데뷔 한 달 만에 최고의 인기용병으로 떠오른 피에를 29일 대전구장에서 만났다. 그는 경기가 비로 취소된 게 실망스러운지 다소 풀죽은 표정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야구 이야기가 시작되자 다시 유쾌한 피에로 돌아왔다. “지금 팬들이 좋아하는 내 모습 그대로, 한국의 야구장에서 내 열정을 불사르고 싶다”며 눈동자를 빛냈다.


-피에의 야구인생 얘기부터 해보자. 언제, 어떻게, 왜 야구선수가 됐나.

“열 네 살 때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 다들 알다시피 도미니카에서는 운동선수로 미국에 진출하는 것은 엄청난 성공 가운데 하나다. 체격 조건도 좋고 이것저것 운동을 잘 하니까 주변에서 권유도 많이 했다. 사실 더 어릴 때는 농구를 했다. 그런데 NBA는 워낙 문이 좁아서 야구가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야구를 선택한 그 순간부터 정말 이 스포츠가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2007년 처음 미국(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리그)에 가면서 꿈을 이뤘는데.

“친한 친구랑 같이 컵스에 가서 경기도 함께 뛰었기 때문에 다행히 적응이 어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마이너리그에서 단계별로 올라갈 때마다 4년 연속으로 팀이 우승 했다. 들어가자마자 네 번을 우승해서 잘 풀렸으니 당연히 좋았다. 무엇보다 상위 리그에서 콜업이 될 때, 그 소식을 처음으로 들었던 그 순간들이 정말 행복했다. 그 기분은 선수만 아는 거니까.”


-야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야구가 물론 내 직업이지만, 난 이 스포츠 자체를 사랑한다. 정말 재미있다. 승부욕이 강해서 경기에 지면 화도 나지만, 동료들과 함께 경기에 집중하는 게 기분 좋다. 솔직히 프로 선수 생활을 하다 보면 부담이 생길 때도 있는데, 그런 마음은 경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최대한 즐기는 게 내 철학이다. 힘들수록 더 밝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솔직히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전혀 새로운 야구 문화 안에 뛰어든다는 게 어려운 도전이었다. 그래도 새로운 경험을 하다 보면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 같았고, 좀 더 성숙해질 것 같았다. 잘 선택한 것 같다.”


-한국 야구와 한국 투수들을 겪어보니 어떤가.

“야구를 하러 한국에 왔고, 팬들이 많이 사랑해주는 게 느껴져서 좋다. 미국 야구와 다른 면들이 많지만, 결국 다 내가 적응해나가야 할 부분이다. 어떤 나라의 어느 리그를 가든 스타일이 다른 게 당연하다. 한국 투수들은 공이 빠른 파이어볼러들이 별로 없는 대신 변화구 제구 능력이 미국 투수들보다 좋은 것 같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볼카운트 2B-0S에서는 80% 이상 직구가 들어온다고 보고 노려 칠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투수들이 변화구에 대한 자신감이 있으니까 뭐가 들어올지 예측하기 힘들다.”


-문화적 차이도 있을 것 같다. 선발투수 케일럽 클레이를 진정시키겠다고 수비 도중 외야에서 마운드로 달려왔던 해프닝(4월 16일 광주 KIA전)이 대표적이다.

“사실 그때 클레이가 많이 흔들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보통 그런 일이 있으면 내야수들이 다독여주는데, 외국인선수라 언어 문제로 다른 선수들이 얘기를 못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다른 내야수들에게 얘기해보려 해도 마찬가지였다. 클레이가 원래 직구를 140km 초반은 던지던 투수인데 유독 그날 구속이 계속 떨어졌다. 혹시 다쳤나 싶어서 같은 용병끼리 걱정이 많이 됐다. 그래서 마운드 근처에 가서 직접 얘기를 해보려고 했던 거다. 사실 나는 원래 팀원들 신경을 많이 쓰는 스타일이다. 투수가 없으면 경기를 제대로 해나갈 수 없으니까 내가 좀 예민해졌던 것 같다.”


-야구장 안팎에서 늘 같이 다니는 매니저 겸 친구(알프레도 소리아노)의 존재도 눈에 띈다. 이 역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알프레도와 나는 어릴 때부터 한동네에서 같이 자란 친구다. 컵스에 같이 뽑혀서 간 친구가 바로 알프레도였고, 어릴 때부터 1년 365일 붙어 다니다시피 했다. 타지에서도 늘 툭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마음의 안정도 되고, 미국에서나 도미니카에서나 항상 같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안 좋을 때 잘 캐치해서 조언해주기도 하니 도움도 많이 된다. 알프레도가 여기서 도미니카 음식도 많이 해주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어려움도 없다. 늘 함께 하는, 고마운 친구다.”


-한국생활 첫 해라 향수병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도미니카에서 가장 그리운 존재는 누군가.

“아이들, 그 중에서도 아들이 가장 많이 보고 싶다. 사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는 더 많이 보고 싶고 고향 생각도 많이 났는데, 미국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적응이 돼서 이젠 그런 부분은 잘 이겨내는 편이다. 요즘은 화상통화도 잘 돼서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과 늘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알프레도가 5일에 다시 도미니카로 떠나는데, 그 후에는 고향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아들이 한국에 방문할 계획은 없나.

“아직 많이 어리다. 도미니카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비행시간이 길어서 여정이 힘들다. 만약 내년에도 한국에서 뛰게 된다면 미리 준비를 해서 꼭 데려오고 싶다.”


-김태균, 정근우를 비롯한 팀메이트들과 세리머니를 연습하는 장면을 봤다. 동료들과도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말이 필요 없는 친구들이다. 나쁜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최고의 동료들을 만난 것 같다.”


-팬들이 이미 많이 생겼다. 그들에게 어떤 야구를 보여주고 싶은가. 또 어떤 용병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지금 내가 뛰고 있는 모습 자체를 팬들이 많이 좋아해주시기 때문에 이대로 열심히 하면 될 것 같다. 이게 내 꾸밈없는 모습이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모습이다. 어차피 내가 40홈런을 치는 타자도 아니지 않나. 공격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 나는 매일 잔꾀를 부리지 않고 팀을 위해 열정을 바칠 준비가 돼 있다. 물론 팬서비스도 잘 해주고 싶다. 팬들이 있어서 선수가 있지 않나. 잠깐 시간을 내 사인을 하는 것만으로도 팬들에게 기쁨을 주고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그게 야구선수의 책임인 것 같다.”


펠릭스 피에는?

▲생년월일=1985년 2월 8일 ▲키·몸무게=188cm·86kg ▲데뷔=2007년 시카고 컵스 입단 ▲경력=시카고 컵스∼볼티모어∼클리블랜드∼피츠버그∼한화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425경기 타율 0.246 17홈런 99타점 ▲마이너리그 통산 성적=847경기 타율 0.293 76홈런 412타점 ▲2014년 연봉=25만달러 ▲2014시즌 성적(30일까지)=21경기 타율 0.333 2홈런 20타점

대전|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goodgo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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