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선. 스포츠동아DB
그러나 이런 박은선과 달리 우리 축구계는 여전히 기가 찰 행태를 거듭하고 있다. 이른바 ‘박은선 사태’를 주도했던 여자실업축구 WK리그 감독들에 대한 징계 절차가 아시안컵 기간 중 시작됐지만, 씁쓸한 뒷맛만을 남겼을 뿐이다. 한국여자축구연맹(회장 오규상)은 박은선의 성 정체성에 시비를 건 WK리그 감독 4명을 20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그런데 결론은 없었다. 상급단체인 대한축구협회(회장 정몽규) 징계위원회에 박은선 관련 안건을 올린 것이 유일한 조치였다.
공을 넘겨받은 대한축구협회 징계위(23일)도 똑같았다. “여자연맹이 먼저 징계를 확정하라”고 결정했을 뿐이다. 정몽규 회장이 회장단 회의 등을 통해 중징계 의지를 내비친 데다, 축구협회 ‘유형별 징계 규정’ 7조(성범죄 등 차별행위) ㉮항(성범죄-성폭행, 성추행, 성희롱)도 강화돼 ‘자격정지 3년 이상-제명’의 적용 여부가 관심을 샀지만 정작 실행 단계에서 슬그머니 발을 뺀 꼴이다.
이처럼 한국여자축구연맹과 대한축구협회가 결론을 미루는 이유를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사실은 두 단체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여자축구선수(박은선)에 성별 진단을 요구한 건 (감독들의) 성희롱”이라는 결정을 내리며 6월 25일까지 관련자 징계를 확정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아시안컵에서 박은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딴죽을 건 상대국은 전무했다. 유력 외신이 관심을 보일 정도의 불필요한 해외토픽을 만들어낸 것은 결국 우리 축구계 스스로다. 지금이라도 눈치 보지 말고 당당히 책임을 지는 자세야말로 우리 축구계가 ‘상처 입은’ 박은선에게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인지 모른다.
남장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