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 진출의 꿈을 이루기란 결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태극전사들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김영권(뒷줄 오른쪽 4번째)의 눈가에 맺힌 이슬이 모든 것을 역설한다. 23일(한국시간) 포르투 알레그리에서 열렸던 알제리전에 앞서 태극전사들이 애국가를 제창하고 있다. 포르투 알레그리(브라질)|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yohan@donga.com
그는 그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축구인생 마지막 경기라는 각오로
뛰겠다고 했다
어두운 방에서 인터뷰를 끝내고
편집실에서 카메라를 돌리자
단호하던 말투와는 달리
화면속 그는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승부의 세계
내일이 또 시련일지라도
그들은 최선을 다해 달릴뿐이다
얼마 전 이구아수폭포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10년간 축구에 대한 글만 써서 그런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네요. 그래서 카메라를 꺼내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진으로도 그 모습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이구아수폭포는 정말 크더군요.
월드컵이 얼마나 큰 대회인지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2002년 자원봉사자, 2006년 웹사이트 한국어판 에디터, 2010년 개최도시 파견 에디터로 일했던 저는 이번 대회에서 TV 프로듀서로 우리나라 대표팀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4번째 월드컵이지만 매번 다른 역할을 맡아서 그런지 항상 새로운 느낌입니다. 이렇게 거대한 프로젝트가 크고 작은 시행착오 속에서도 어떻게든 굴러가는 걸 보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죠.
우리 대표팀만 놓고도 대한축구협회뿐 아니라 국제축구연맹(FIFA), 대회조직위원회, 주관방송사, 지자체 등 여러 조직에서 엄청난 인력과 자본을 투자하는데, 그런 협력체계가 32개나 있고 모두 동시에 돌아간다고 생각해보세요.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라는 상투적 표현이 어울리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군대와 경찰까지 투입되는 대규모 행사입니다. 게다가 그 32개 팀은 모두 승리를 원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다음 단계에 올라서고, 다른 누군가는 집에 가야 합니다.
브라질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 대표팀을 두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모두 승리를 기대했던 알제리전을 하루 앞두고 기자회견이 열렸죠. 팀 분위기에 대한 질문에 홍명보 감독은 웃으면서 “지금 분위기는 여러분이 보시는 그대로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첫 경기에서 강호 러시아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뒀기 때문에 나머지 경기도 해볼 만한 것처럼 보였죠. 저는 심지어 조 2위로 16강에 올라가면 포르투 알레그리로 돌아오게 되니까, 현지 맛집이나 좀 알아봐야겠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분위기는 분명히 좋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맞붙어보니 알제리는 만만한 팀이 아니었죠. 전반전에만 3골을 내주고 무너졌습니다. 하프타임에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는 후반전 초반 한 골을 만회했고 추가 실점만 없었다면 충분히 따라붙을 수 있는 흐름이었습니다. 아쉽지만 결과는 충격적 패배였죠. 경기가 끝나고 터벅터벅 걸어나오는 선수들에게 차마 말을 걸 수도 없을 정도로 침울한 분위기였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이틀이 지나서야 중앙 수비수 김영권(24·광저우 에버그란데) 선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기에는 아무래도 글보다는 말이 낫고, 비슷한 이치로 사진기보다는 비디오카메라가 나을 겁니다. 녹음기랑 수첩만 가지고 취재할 때는 몰랐는데, 카메라의 힘은 역시 대단하더군요. 김영권 선수는 알제리전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벨기에전이 마치 축구선수로 뛰는 마지막 경기라는 생각으로 죽기 살기로 뛰겠다는 각오를 밝혔습니다. 어두운 방에서 진행된 인터뷰라 눈치 채지 못했는데, 편집실에서 녹화된 화면을 보니 이상한 점이 보였습니다.
분명히 저랑 이야기할 때는 단호한 말투로 조리 있게 말했던 김영권 선수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더군요. 혹시라도 눈물을 흘릴까봐 중간 중간 침인지 콧물인지 모를 무언가를 삼키는데 왜 전 몰랐을까요. 이틀이나 지났는데, 다 지나간 일인데 뭐가 그렇게 슬펐을까요. 눈치 없는 저로선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의 장점보다 단점을 찾는 것이 쉽듯이, 누구를 칭찬하기보다 헐뜯는 편이 더 쉬운 것 같습니다. 러시아전에선 공격이 문제였는데 알제리전에선 수비가 문제였다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주장 구차철(25·마인츠) 선수가 그러더군요. 지금까지 여러 가지 포지션에서 뛰어봤지만, 축구화를 벗는 순간까지 어느 위치가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모를 거라고요. 축구선수들처럼, 우리 같이 평범한 팬들도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 정훈채는?
FIFA.COM 에디터. 2002한일월드컵에서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 안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축구와 깊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이후 UEFA.COM 에디터를 거치며 축구를 종교처럼 생각하고 있다. 2014브라질월드컵에는 월드컵 주관방송사인 HBS의 일원으로 참가 중이다. 국제축구의 핵심조직 에디터로 활동하며 세계축구의 흐름을 꿰고 있다.
상파울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