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탄탄한 스토리, 강렬한 긴박감, 어둡지만 아름다운 무대연출, 뛰어난 음악을 겸비, 2012년 무대에 올려진 이후 줄곧 흥행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제공|아시아브릿지컨텐츠
원작서 메리만 빌려온 완전히 다른 작품
서윤미 작가가 작곡·연출…순수 한국판
탄탄한 스토리·아름다운 무대연출 압권
런던 체리나무거리 17번지에 사는 완고한 은행가 뱅크스씨의 자녀인 제인과 마이클은 엄청난 장난꾸러기들이다. 아이들에게 질린 나머지 짐을 꾸려 집을 나간 유모들은 한 둘이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손에는 커다란 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앵무새 손잡이가 달린 검은 우산을 든 여인이 동풍을 타고 날아온다.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행복해지는 주문을 알고 있는 완벽한 유모. 바로 메리포핀스다.
1934년 영국 아동문학가 파멜라 린던 트래버스의 대표작으로 줄리 앤드류스가 메리포핀스를 맡은 1964년 뮤지컬 영화가 유명하다. 2004년에는 ‘오페라의 유령’, ‘캣츠’, ‘미스 사이공’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가 디즈니와 손을 잡고 뮤지컬 ‘메리포핀스’를 무대에 올렸다.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메리포핀스’의 ‘어두운 버전’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유모 메리’라는 설정만 빌려왔을 뿐 내용은 완전히 다르게, 어둡게 전개된다. 이 멋진 작품은 놀랍게도 순수 한국산이다. 서윤미 작가가 대본을 쓰고 음악을 작곡했으며 연출까지 맡았다. 2012년 처음 막을 올려 공연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제18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수 십억원의 제작비를 쏟아 부은 대작들을 제치고 베스트창작뮤지컬상, 연출상, 극본상, 음악상에 노미네이트됐다.
● 배우들 ‘절실함의 100분’ 흥행 비결
1926년 나치 정권 아래의 독일. 심리학자 그라첸 박사의 대저택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그라첸 박사가 입양한 네 명의 남매는 보모이자 박사의 연구조교였던 메리 슈미트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전신화상을 입으면서까지 아이들을 살려낸 메리는 세상으로부터 천사로 칭송을 받지만 다음날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놀라운 것은 이날의 사건을 아이들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그로부터 12년이 지났다. 각자 다른 집에 입양돼 새로운 삶을 살던 네 남매는 변호사가 된 장남 한스 시몬에 의해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그리고 서서히 고통 속에 그날의 끔찍한 기억과 비밀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블랙메리포핀스’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단단한 스토리,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렬한 긴박감, 어둡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무대연출, 뛰어난 음악을 빠짐없이 갖춘 뮤지컬이다. 마치 ‘이래도 반하지 않을 테냐’하는 듯한 박력이 느껴진다. 한스 시몬(박한근 임병근), 헤르만 디히터(서경수 송원근 배두훈), 안나 레아(강연정 유리아), 요나스 엥겔스(김경수 윤나무 정휘), 메리 슈미트(홍륜희 최현선)를 맡은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제각기 비밀을 간직한 인물들의 성격이 갓 잡은 광어처럼 펄펄 날뛴다. 최소한의 절제만을 가한 감정의 폭발이 순식간에 무대를 불살라 버린다.
메리 슈미트 역의 홍륜희는 “어느 공연이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블랙메리포핀스는) 무대 위나 밖이나 한시도 정신줄을 놓을 수 없는 공연이다. 관객 분들께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절실함의 100분(공연시간)’을 보시고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상징하는 그로테스크한 무대 장치는 반드시 보아둘 것. 이야기와 이질적으로 어긋나는 안무는 마치 ‘움직이는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메리와 남매들이 보여주는 음산한 그림자극은 시작부터 관객의 숨을 죽이게 만든다. ‘누가’가 아닌 ‘왜’에 초점을 맞춘 것도 해답에 대한 참신한 접근법이다.
“우리도 이 정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뮤지컬. 어쩐지 두 번은 공연장을 찾아주어야 될 것 같은 작품이다. 8월31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공연한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