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부의 세계 들어오니 부진 선수들 마음 이해 가
스펙의 가장 큰 위험성은 사람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집안이 어떤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에 따라 멋대로 생성된 이미지가 당사자의 주위에 쌓이기 시작한다.
여기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4개국어가 가능한 한 스포츠 아나운서가 있다. 대화를 나누면 공통 관심사가 있을까 싶지만, 영국 프리미어리그 명문구단 리버풀 이야기를 꺼내면 눈부터 반짝일 정도로 평범하다. 그리고 남자 개그맨에게 욕을 들어도 해맑게 웃어넘길 줄 안다. 이런 점이 스펙을 걷어내자 보인 신아영 아나운서의 실체다.
"저에게 따라다니는 많은 수식어 때문에 굉장히 지적일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기대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들이 있는데 실제 제 모습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래도 요즘은 '더 지니어스' 때문에 많은 분들의 기대감이 조금씩 부서지고 있지 않나요?"(웃음)
신아영은 스스로 "최근에는 방송 때문에 ‘바보’ ‘호구’ 소리까지 듣고 있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지적인 이미지는 깨져도 스펙으로 인한 부담을 덜어가는 것을 즐기는 듯 했다.
"‘더 지니어스’ 출연을 두고 갈등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한 일인 것 같아요. 각자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게임을 한다는 것이 뭔가 거대한 실험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흥미로웠죠. '나도 저 실험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욕이 샘솟더라고요."
그러나 문제의 실험에 참여한 후 신아영은 앞서 언급한 대로 약간의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이에 대해 그는 "게임 당시에는 그만한 이유와 명분이 있어 행동을 취했다. 그런데 편집이 되고 축소가 되면서 남에게 의지만 하는 사람이 되더라. 반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 속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 스포츠 아나운서 일을 할 때도 굉장히 도움이 돼요. 아무래도 제가 승부의 세계에 직접 뛰어들었고 그 안에 있어보니 그동안 스포츠에서도 가려져 있던 부분들을 끄집어 내고 싶어져요. 부진에 빠지거나 제대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들을 보면 저 같기도 하면서 그들의 기분이 어떨지 생각해 보기도 하고요."
이런 장점 외에도 신아영은 “게임을 하면서 나도 몰랐던 나에 대해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스펙을 걷어낸 자신의 실제 모습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 모니터를 해보니 제가 표정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더라고요. 그리고 전 왜 그렇게 입을 벌리고 있는 걸까요? 또 게임을 할 때는 배신해야 할 때 못하고, 과감해야 할 때 소심해지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런 모습들이 진짜 저인걸요.”
어쩌면 신아영에게 ‘더 지니어스’는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이 게임을 다른 어떤 참가자보다 열심히 즐기고 있다. 그리고 우승에 대한 바람도 지닌 야망녀이기도 하다.
“이제 여성 우승자가 나와도 될 때죠. 저도 우승은 꼭 해보고 싶어요. 상금을 받으면요? 절 아껴준 지인들에게 보답한 후에 좋은 곳에 기부하고 싶어요.”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