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박경림 송경애와 엄마들의 즐거운 기차여행

입력 2015-02-28 18: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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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은 남편, 아이 걱정 다 털어버리고 그냥 우리끼리 즐겁게 떠나요. 어때요?‘
“예~! 좋아요.”

차가운 아침 공기가 코끝을 찡하게 하던 27일 금요일 아침, 청량리역 3층의 대합실이 활기찬 아줌마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저마다 간편한 나들이 옷차림으로 삼삼오오 모여있는 120여명의 얼굴에는 여행에 대한 기대가 담긴 들뜬 표정이 가득했다.
이들 앞에서 식구들 걱정은 딱 하루만 잊어버리자고 ‘충동’하는 사람은 방송인 박경림. 이날 모임을 성사시킨 두 주역 중 한 명이다. “엄마들이 늘 남편걱정, 아이 걱정을 하면서 정작 자신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엄마들이 하루는 함께 모여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껏 웃고, 즐겼으면 하는 바람에서 마련한 여행이죠.”
‘엄마의 꿈열차’라는 주제로 마련한 이번 여행은 청량리역에서 ‘정선아리랑열차‘을 타고 강원도 정선으로 가서 그곳의 명물인 5일장과 스카이워크를 보고 정선문화예술회관에서 정선아리랑극을 관람한 뒤 토크 콘서트를 갖는 일정으로 진행했다.

‘엄마의 꿈열차’ 여행은 박경림과 함께 또 한 명의 노력이 없었으면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로 우리 사회의 ‘성공한 여성 CEO’를 말할 때 늘 모델로 거론되는 송경애 SM C&C BT&I 대표다. 그녀는 250만원으로 회사를 시작해 지금은 2600억원대의 국내 대표 여행업체로 키운 성공 스토리로 유명하다. 특히 두 아이의 엄마, 치과의사의 아내라는 역할과 함께 적극적인 사회기부 활동까지 같이 하며 이룬 것이어서 더욱 화제가 됐다.

삶에서 성공을 이룬 ‘워킹맘’인 두 사람이 인연을 맺은 계기는 박경림이 인터뷰 에세이 ‘엄마의 꿈’을 위해 송경애 대표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이후 박경림이 책 출간을 앞두고 송 대표와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엄마들을 격려하기 위한 행사를 갖자는데 뜻을 모았다. 송 대표는 여행업체의 CEO로서 전문성을 발휘해 엄마들이 좋은 추억을 얻을 여정으로 기차여행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송 대표는 “엄마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여행을 선물하고 싶은 생각에 좋은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최근 개통한 관광열차를 타고 우리 전통 장터에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추진했다”고 밝혔다.

◆ 친구, 엄마와 함께 떠난 여행 “여고시절 수학여행 가는 기분”

박경림과 송경애 대표, 120명의 엄마들이 탄 기차는 1월15일 개통한 코레일의 관광열차 ‘정선아리랑열차 A-트레인’이다 코레일이 철도관광 활성화를 위해 중부내륙순환열차 O-트레인(서울-영주, -제천), 백두대간협곡열차 V-트레인(철암-분천)에 연계하는 노선으로 개발한 열차다. 정선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인 정선아리랑을 테마로 했고 여객기차로는 처음으로 지역명칭을 사용했다. 청량리-정선-아우라지를 하루 한번 왕복하는 일정이다.

정선아리랑열차는 총 4량의 객차로 구성된 아담한 편성이다. 영국 탠저린 사가 디자인한 객차는 정선을 대표하는 능선, 동강, 아우라지 등을 형상화했고, 밖의 풍광을 즐길 수 있게 장거리 열차로는 처음으로 넓은 전망창과 개방형 창문을 달았다. 1호차와 4호차의 전망칸에는 기찻길과 주변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포토존도 갖추고 있고, 음악방송, 기념 사진촬영, 퀴즈게임 등의 이벤트도 여행을 하는 동안 즐길 수 있다.



운행을 시작한지 한 달이 조금 지난 정선아리랑열차는 여행에 참가한 대부분의 엄마들이 첫 경험이다. 기차여행이 주는 특유의 낭만을 기대하고 객차에 오른 이들은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모습에 환하게 얼굴이 피었다. 오전 8시 10분 기차가 출발해 정선을 향해 달리는 동안 모두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에서 시선을 놓지 못했다. 코레일이 관광열차에서 실시하는 서비스인 차내 이벤트와 기념촬영 때는 마치 소녀들처럼 깔깔거리며 즐거워했다.
이번 여행에는 친구들 못지않게 엄마와 딸 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참가한 커플이 꽤 많았다. 모처럼의 기차여행이 주는 즐거움과 푸근한 정감, 그리고 저물어가는 겨울 산의 전경은 이들이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충분했다.

◆ 산나물 향기와 곤드레밥, 콧등치기 국수…정겨운 수다 한 자락

여행을 떠난 27일은 정선 5일장이 열리는 날이다. 매달 끝이 2일과 7일인 날에 열리는 정선 5일장은 1966년 처음 열려 5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깊은 재래장터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인근 산골에서 채집한 각종 산나물과 지역특산품, 향토음식을 맛볼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정선장에 들어서자 활기차고 떠들썩한 장터 특유의 들뜬 분위기가 박경림과 송경애 대표, 그리고 엄마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함께 온 동료,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새로 사귄 사람들과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장 여기저기를 다니며 구경을 하고 물건을 사느라 정신이 없었다.
낮이 되면서 날씨가 풀려서 그런지 설연휴 이후 처음 열리는 장인데도 시장 곳곳은 사람들이 제법 북적거렸다. “박경림이다.” 이내 알아본 시장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더니, 곧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늘 적극적이고 환한 웃음을 잃지 않는 박경림답게 장구경을 하고 음식을 맛보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쏟아지는 사진촬영 요청을 마다하지 않고 모두 응했다.

재래 장의 매력은 물건을 구경하는 사는 것 못지않게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맛보는 것. 특히 정선장에서는 강원도의 특산물인 메밀을 이용한 전병을 비롯해 곤드레밥, 콧등치기, 올챙이국수 등이 먹을 수 있다. 박경림과 엄마들도 이내 시장 곳곳의 식당을 찾아가 이곳이 아니면 먹어볼 수 없는 향토음식의 매력에 푹 빠졌다. 바쁜 일정만 아니라면 이곳에서 옥수수술 한 사발이라도 하면 더 좋을 분위기. 그래도 모처럼 만나는 지방 재래장의 분위기에 취한 엄마들의 자리에서는 정겨운 수다가 끊이지 않았다.

정선장에 이어 엄마들의 발길은 병방치 스카이워크로 향했다. 정선의 풍광을 가장 박진감 넘치게 볼 수 있다는 스카이워크에서 내려다보는 동강의 절경과 유리 바닥이 주는 스릴감에 탄성이 터졌다. 다음 일정 때문에 문화예술회관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말에 좀더 경치를 즐기고 싶어하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정선문화예술회관에서는 아리랑을 테마로 한 상설공연 ‘메나리’를 감상했다. 정선아리랑의 가락에 선녀와 나무꾼, 견우와 직녀 같은 친숙한 이야기를 담은 무대다.
이어 이날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엄마들만을 위한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일과 가족을 함께하는 인생에서 성공을 거둔 두 사람, 박경림과 송경애 대표의 대담과 이들에게 엄마들이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속편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속풀이 수다’의 한마당. 박경림과 송대표가 이 여행을 기획하면서 소망했던 그 시간이었다.

조금 빡빡하게 진행된 이 당일치기 여행에 대한 느낌은 어땠을까. 정선 스카이워크를 보고 나오면서 두 손을 꼭 잡고 이동하던 한 모녀의 대화에서 그 답이 있었다. “얘, 다음에 우리끼리만 꼭 다시 한번 오자.”

정선|스포츠동아 김재범 전문기자 oldfiel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kobau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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