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김은선, 하늘의 할머니께 바치는 태극마크

입력 2015-03-17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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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

“할머니께 약속을 지켰다”

A대표팀에 깜짝 발탁된 김은선(27·수원)의 눈가는 촉촉했다. 17일 오전 울리 슈틸리케(61·독일) 축구 대표팀 감독이 27일 우즈베키스탄과 31일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23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수원에서는 김은선이 유일하게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은선은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이 소식을 들었다. 소속팀 수원이 18일 로비나 경기장에서 브리즈번 로어(호주)와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G조 조별리그 3차전을 갖기 때문이다.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그에게 소감을 물었다.


-대표팀에 승선했다.

“오늘 아침에 악몽을 꿨다. 꿈에서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다. 마지막에 차와 강하게 충돌하면서 깼다. 내가 숨을 몰아쉬니 (오)범석이 형이 걱정할 정도였다. 정신 차리고 보니 모바일 메신저에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많이 와 있었다. 솔직히 이번 대표팀에는 별로 기대를 안 했다.”


-기대하지 않은 까닭은.

“당연히 해외파 선수들이 뽑힐 것이라 봤다. 동아시아컵 때는 K리거 선수를 중심으로 뽑는다고 했으니 욕심이 났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악몽을 꾸고 나서 축하 메시지를 받아서 그런지 정신이 없다. 아버지도 많이 기뻐해주셨다.”


-슈틸리케 감독은 2~3명의 K리거를 보고 있다고 했는데.


“솔직히 나라고 생각 안했다. 지난해 12월 가진 제주 전지훈련에서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자체 평가전에서 자책골도 넣고 교체로 나왔다. 자책골이 임팩트가 있었나.(웃음) 주위에서 뽑힐 것 같다고 말해도 ‘피곤하다’고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안 뽑힐 것 같아서 그런 것인데 발탁돼 놀랍다.”


-가족들이 좋아할 것 같다.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스페인 전지훈련을 하는 도중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전지훈련 기간 내내 내가 걱정할까봐 알려주지 않았다. 할머니를 모셔둔 부평의 납골당에 가서 올해 꼭 태극마크를 다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하늘에 계신 할머니가 기뻐하실 것이다.”


-할머니와 추억이 있는지.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안 계셨다. 아버지가 일을 나가서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할머니 댁을 오가며 추억을 많이 쌓았다. 스페인 전지훈련 중에는 한국에 오는 전화를 하나도 안 받았다. 그런데 할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왠지 받아야할 것 같아서 통화했다.”


-어떤 이야기를 했나.


“할머니가 하는 이야기는 똑같다. 동생 잘 챙기고, 건강 하라는 이야기였다. 별 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한국에 와서 날짜를 보니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5일 전에 하신 전화였다. 마지막 통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힘들었지만 할머니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 독한 마음을 먹고 경기장에서 뛰었다. 그래서 대표팀에 발탁된 것 같다.”


-동대부고-대구대를 거칠 때만해도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다.

“난 명문 팀과 명문대에 욕심이 없었다. 나를 원하는 곳에 가서 축구를 하고 싶었다. 그게 내 축구 철학이다. 그래야 내가 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원하는 팀에서 희생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은혜 은(恩)에 베풀 선(宣)으로 이름을 지어주셨다. 이름 따라 가는 것 같다.”


-수원에 오면서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정원 감독께 꼭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수원에 데려 오셔서 대표팀에 가는 것이다. 감독님의 영향이 크다. 한 층 더 좋은 선수가 된 것도 감독님 영향이다. 자신감을 많이 불어 넣어줬다.”


-대표팀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이번에 처음 발탁된 것이다.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다. 다른 잡생각을 하지 않고 경기장에 들어가 기회를 잡는다면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줄 생각이다. 난 공을 갖고 재주 부리는 스타일이 아니다. 내가 잘하는 부분, 수원에서 하던 궂은일을 할 생각이다. 소속팀 수원에서처럼 몸을 던지며 뛸 것이다.”


-18일에는 브리즈번 로어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G조 조별리그 3차전을 앞두고 있는데.


“14일 인천 유나이티드 전을 치르고 바로 호주로 넘어왔다. 힘든 상황이지만 브리즈번 역시 15일 시드니FC와 경기를 했다. 양팀 모두가 피곤하기 때문에 정신력의 승부라고 본다. 실수를 적게 하는 팀이 이길 것이라 믿는다.”

동아닷컴 송치훈 기자 sch5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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