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헨리 “풀뿌리 육성·인프라 구축, 한국럭비 성장의 필수조건”

입력 2015-05-2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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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기간 중 스포츠동아와 만난 그레이엄 헨리 전 뉴질랜드럭비대표팀 감독은 한국 럭비의 성장 조건으로 풀뿌리 럭비 육성, 럭비인구 증대, 지속적인 인프라 확충을 제시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 그레이엄 헨리 전 뉴질랜드 럭비대표팀 감독

“어릴적부터 관심 늘려야 럭비 인구도 는다”
25년간 교직생활 접고 럭비감독으로 성공
2011년 럭비월드컵 우승 진두지휘한 명장


그레이엄 헨리(Graham Henry·68) 전 뉴질랜드럭비대표팀 감독(현 뉴질랜드럭비협회 고문)은 세계 럭비 역사상 가장 성공한 지도자로 꼽힌다. 재임기간 중 치른 103경기에서 88승을 거뒀고, 2011년 자국에서 열린 럭비월드컵에선 우승컵을 조국에 안겼다. 유니폼이 검은색이라는 데 착안해 ‘올 블랙스’란 닉네임으로 통하는 뉴질랜드럭비대표팀이 월드컵 정상에 선 것은 1987년 제1회 대회 후 2011년이 2번째였다. 헨리 전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2번에 걸쳐 잡았다. 2004년부터 2년간 이끌며 2005년 브리티시&아이리시 라이언스, 트라이 네이션스 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데 이어 2009년 7월 다시 지휘봉을 잡아 평생의 소원을 성취했다. 뉴질랜드 상공회의소 초청으로 19일 ‘2015 잉글랜드 럭비월드컵(9월 18일∼10월 31일) 자선행사의 밤’에 참석하는 등 3박4일의 내한 일정을 소화한 헨리 전 감독을 서울 반포동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럭비인으로서 궁극적인 비전과 꿈은 무엇이었나.

“1970년대 초부터 럭비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학교 코치와 오클랜드지역대표, 뉴질랜드 프로(블루스), 웨일스대표팀 등을 거쳤다. 이 때 큰 목표를 품었다. 럭비월드컵이었다. 조국의 제자들을 이끌면서 뉴질랜드를 국제스포츠계에 알리고 싶었다.”


-결국 꿈을 이뤘다.

“과거에는 평범한 학교 교사였다. 25년간 교직 생활을 했고, 10년간 교장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럭비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릴 수 없었다.”


-자신만의 지도철학이 있다면.

“40년간 지도철학은 가르침의 대상과 시기에 따라 계속 바뀌었다. 한때 독재자처럼 군림한 적도 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더라.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최대한 의견수렴을 하고, 선수들에게 뚜렷한 책임감을 심어주려고 했다. 적절한 역할 분배도 필수다.”


-뉴질랜드 럭비의 성공 비결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

“역사, 문화, 전통이다. ‘올 블랙스’는 1905년 처음 영연방, 프랑스 등지를 투어했다. 이 때 검은색 유니폼을 입으며 지금의 애칭을 얻었다. 국민들에게 국가의 정체성, 자긍심을 심어줬다. 우린 1·2차 세계대전 참전을 계기로 정식 국가로 인정받았는데, 여기에 ‘올 블랙스’의 힘도 컸다. 물론 뉴질랜드의 인종적 구성도 럭비에 적합했다.”


-‘올 블랙스’가 매 경기 행하는 ‘하카(전통 춤)’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단순 이벤트처럼 보여도 이는 도전을 알리는 의식이다. 상대에게 위협을 가하겠다는 의미? 조상들에 대한 존경의 뜻도 있다. 뉴질랜드는 백인 외에, 사모아와 피지, 퍼시픽 문화가 섞여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하카’는 모두를 하나로 이끄는 힘이다.”


-한국 럭비의 풍토는 아주 척박하다. 어떻게 해야 대중과 가까워질까.

“한국 럭비의 세계랭킹은 22위다. 월드컵 출전국이 20개국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머지않은 시일에 월드컵에 나갈 것이다. 뻔한 대답일 수 있지만, 인프라 구축과 어릴 적부터의 관심이 필수다. 한국에는 뚜렷한 대회도, 프로리그도 없다. 풀뿌리부터 키워야 한다. 럭비 인구를 늘려야 발전도 있다. 뉴질랜드에는 14만여명의 등록선수 중 프로 200여명, 세미프로 150여명이 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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