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 가운데에는 오랜 무명의 시절을 지나온 이들이 많다. 재능과 실력을 일찌감치 인정받지 못한 채 갖은 수모와 어려움을 견뎌내고 숱한 세월이 지난 뒤 맞이하는 영광과 팬들의 환호는 그들에게 아마도 인생 최대의 행복일 터이다.
1995년 연기자 김보성(사진)이 첫 드라마 주연을 맡았다. 그가 권오중, 김지호 등과 함께 주연으로 나선 MBC 미니시리즈 ‘TV시티’가 첫 방송한 날이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듯 김보성은 방송인들의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속에서 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스턴트맨 역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한 달여 뒤 KBS 2TV ‘서궁’에서도 주연으로 나섰다.
사실 김보성은 이미 ‘허석’이라는 본명으로 영화계에서는 이름과 얼굴을 알린 연기자이기는 했다. 1980년대 말 몇 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그는 충무로 영화사 사무실에서 우연히 강우석 감독과 맞닥뜨렸다. 강 감독은 “박중훈의 냄새가 난다”며 김보성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고 결국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 이미연과 함께 주연으로 그를 내세웠다. 이후 김보성은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열아홉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 등 청소년 영화에 잇따라 출연했다. 하지만 이는 그에게 또 다른 이미지의 장벽이 되고 말았다. 이미연, 김민종, 최진영 등 그와 함께 연기했던 이들은 스타덤에 오르며 승승장구했지만 김보성은 정체기를 맞았다. 다만 태권도와 권투 등으로 다진 액션연기만큼은 인정을 받으며 드라마 ‘모래시계’ 등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렇게 조·단역을 오가던 그는 1995년 KBS 2TV ‘슈퍼선데이’의 ‘김보성의 미스터리극장’으로 다시 시청자의 눈길을 모았다. 결국엔 ‘TV시티’ 등에 주연으로 나서며 새로운 도약기를 맞았다.
그 2년 전 ‘허석’이란 본명 대신 김보성이라는 예명을 택했다. ‘사고를 몰고 다닌다’며 “오래 살지 못할 운명”이라는 대한속명학회의 의견에 따른 것이었다. 우연일까. 이후 그는 승승장구하며 이듬해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2’로 스크린의 흥행 주역의 자리를 다시 차지했다. 10여년의 무명시절 엑스트라, 스턴트맨, 영화스태프, 청소 등 온갖 일을 하며 액션스타의 꿈을 키운 인내의 성과였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