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오정복 “1군 벤치에 앉는 순간 천국이 따로 없었죠”

입력 2015-06-25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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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복이 NC에서 kt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첫 날(23일) 수원 LG전 7회 결승 3점홈런을 터뜨리며 화려한 이적 신고를 마쳤다. 1군의 간절함을 깨닫고 “한 타석, 한 타석 소중함을 안고 경기에 나서고 싶다”고 말했다.

■ KT 오정복


“트레이드 소식에 ‘기회가 왔다’ 생각”
이적 첫 경기서 홈런…화끈한 신고식
“이제 야구 못하면 집밖에 갈 곳 없어”
“너, 또 한번 반짝하고 끝날 거지?”


수원 kt위즈파크를 찾은 삼성 강명구(35) 전력분석원은 23일 LG-kt전이 끝난 뒤 복도에서 kt 오정복(29)을 만나 진하게 포옹을 했다. 첫 마디는 농담이었지만, 이내 “이번엔 반짝하지 말고 잘해라”라는 덕담이 이어졌다. 비록 주말에 삼성과 상대해야 하는 kt 선수라 전력분석을 하러 왔지만, 남 같지 않은 후배였기 때문이다. 과거 삼성 시절 한솥밥을 먹었고, 2군에서 오랫동안 고생한 그를 잘 알기에 진심으로 응원했다.

NC에서 kt로 트레이드된 뒤 첫 경기인 23일 LG전에 2번 좌익수로 선발출장한 오정복은 4타수 2안타 1홈런 3타점을 올리며 화끈한 신고식을 했다. 특히 홈런은 그야말로 천금의 한방. 4-4 동점이던 7회말 LG 선발투수 헨리 소사를 상대로 극적인 결승 3점포를 터뜨리며 영웅이 됐다.


● 5년 전 그때처럼 화끈한 홈런 신고

오정복은 마산 용마고와 인하대를 졸업한 뒤 2009년 삼성에 입단했다. 신인드래프트 2차 7라운드(전체 53번)에 지명돼 계약금 4000만원을 받았으니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09시즌 중반 1군에 올라왔지만 6경기(7타석)에서 1안타를 때려낸 것이 전부였다.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은 이듬해인 2010년이었다. 5월 2일 대전 한화전에서 임팩트 있는 홈런포로 영웅이 됐다. 9번 우익수로 시즌 처음 선발출장한 그는 5-6으로 뒤진 8회초 마일영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홈런을 터뜨리더니 연장 10회에는 마무리투수 훌리오 데폴라를 상대로 결승 2점홈런을 날려 8-6 승리를 이끌었다. 이뿐이 아니었다. 다음 경기인 5월 4일 대구 롯데전에서도 홈런을 뽑아 화제를 모았다. 강명구가 말한 ‘반짝’은 이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배영섭이 등장하면서 그는 기회를 잃어갔다. 2011년 말 2차 드래프트를 통해 NC로 이적한 뒤 군 입대(경찰야구단)를 했다. 2014시즌을 앞두고 제대했지만, NC에선 주로 2군에 머물렀다. 2014년 1군에서 47경기만 뛰었고, 올해는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그러면서 21일 2대1 트레이드를 통해 홍성용(29)과 함께 마법사 유니폼을 입게 됐다.

“광주 원정경기였는데 짐을 싸다 트레이드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NC에서도 (홍)성용이하고 룸메이트였는데, 광주에서 차를 타고 올라오면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라고. 다시 한번 더 기회를 받을 수 있겠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 간절한 마음, 꿈같은 1군 무대

오정복은 삼성 시절 개그맨으로 통했다. 입만 열면 동료들이 뒤집어졌고, 그의 막춤을 본 사람들은 모두 쓰러졌다. 다들 “야구를 하지 않았으면 개그맨으로 대성했을 것”이라는 평가. 그러나 그는 야구를 가장 사랑했다. 야구가 좋아 야구를 시작했기에 그는 후보로 뛰면서도 늘 유쾌했고, 긍정적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었다. 군대도 다녀왔다. 오랜 기간 이어진 2군 생활. 그는 조금씩 진지해졌다. 철도 들었다.

“1군에서 야구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간절했어요. 2군 선수들 중 1군 벤치 한번 앉아보는 게 소원인 선수들이 수두룩합니다. 저도 1군 벤치에 앉는 순간 ‘천국이 따로 없구나’ 생각했어요. 3심제로 운영되는 2군에서 야구를 하다 4명의 심판과 야구를 하고, 관중 한 명 없는 2군에서만 야구를 하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무대에서 뛴다는 게 행복입니다. 펜스를 부수더라도 다이빙캐치를 하고 싶어요. 1군에서 이 다이빙캐치 한 번 해보려고 새벽부터 일어나 밤늦게까지 훈련을 해왔습니다. 어릴 땐 야구를 못하면 2군으로 갈 수 있지만, 이젠 여기서 야구 못하면 갈 곳은 집밖에 없어요. 한 타석, 한 타석이 소중한데 이젠 웃음도 안 나옵니다.”

kt 조범현 감독은 24일 LG전에 또 오정복을 2번 좌익수로 선발출장시켰다. “어제 잘했는데 한 번 더 기회 줘야지”라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수원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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