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주말 야구여행] ‘9시의 남자’ 안지만의 인생극장

입력 2015-07-10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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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의 남자’ 삼성 안지만은 한때 ‘최경량 선수’였지만 이제 한국프로야구의 ‘최우량 불펜투수’가 됐다. ‘똥개’, ‘만루변태’라는 별명처럼 그가 맡아온 중간계투라는 보직은 빛나지 않지만 꾸준한 활약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냈다. 스포츠동아DB

■ 삼성 불펜 짊어진 진짜 사나이가 사는 법

입단땐 61kg 불과 ‘살 찌우기 전쟁’
닥치는 대로 먹는다고 ‘똥개’ 별명
1군서 살아 남아 최강 필승조 입성
질식불펜 멤버들 떠난 뒤 고군분투
만루에서도 씩씩하게 ‘인생의 직구’


“중학생이니?”

기자의 질문에 그는 수줍게 웃었다.

“저 야구선순데요. 삼성에 입단한 신인인데요.”

이번엔 기자가 할 말이 없어 겸연쩍게 웃어야 했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이냐고 물어볼 만큼, 앳된 얼굴에 깡마른 몸매. 13년 전 대구상고(현 상원고)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단한 안지만을 처음 본 기억이다. 2002년 2월 일본 오키나와. 늦은 밤 삼성 숙소 앞에 사복을 입고 삼성 투수들을 따라다닌 ‘미소년’을 보고는, 한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스프링캠프 구경을 왔다가 선수들 사인을 받으러 찾아온 중학생 팬인 줄 알았다. 입단 당시 안지만의 몸무게는 61kg. 그게 부끄러워 KBO에는 거짓으로 65kg으로 등록했지만, 그럼에도 한동안 KBO에 최경량 선수로 남아 있었다.

투수에겐 하체 훈련이 생명이지만 양일환 투수코치는 뛰다가 살이 빠질까봐 자주 열외를 시켰다. 남들 단거리 열 번 뛸 때 그에겐 일곱 번만 뛰게 했다. 살을 찌우는 게 1차 목표. 경산볼파크에서 생활하던 안지만은 닥치는 대로 먹었고, 배가 부르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잠을 잤다. 팀 선배 권오준은 그런 그에게 ‘똥개’라는 별명을 붙였다.

몸이 불면서 공도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03년 1군에 처음 올라왔다. 큰 점수차에 등판해 형들의 피곤한 어깨를 쉬게 해주는 패전처리 임무. 2004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어린 안지만에게 당시 룸메이트였던 김한수(현 1군 타격코치)가 한마디 했다. “3년만 꾸준히 잘 던지면 네가 말 안 해도 누구나 다 인정해줄 거다. 지금 맡은 일이 별 볼일 없어도 3년 동안 1군에서 살아남아 꾸준히 던져봐라.”

임창용, 오승환, 정현욱, 권오준, 권혁, …. 그 쟁쟁한 틈바구니에서 안지만은 최강 필승조의 일원이 됐다. ‘질식불펜’의 구성원들이 하나둘씩 팀을 떠나고, 지금은 ‘KO펀치’, ‘쌍권총’, ‘안정권 트리오’ 등 수식어도 모두 와해됐지만 삼성 불펜은 여전히 굳건하다. 안지만이 홀로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최고 명문 요미우리가 1965년부터 9년 연속 우승 신화의 시동을 걸 때, 미야다 유키노리는 ‘8시 반의 남자’로 유명했다. 오후 6시에 시작하는 일본프로야구에서 경기 종반 승부처인 8시 반 언저리에 등판해 팀의 승리를 이끄는 남자였다.

미야다에 대입해보면 안지만은 ‘9시의 남자’다. 오후 6시30분에 시작하는 삼성의 경기를 지켜보노라면 9시 즈음에 등판을 준비하는 그를 만날 수 있다. 이닝으로 따지면 7회나 8회. ‘삼성 야구’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안지만 게임’이다. 삼성은 안지만이 등판할 상황을 만들어주기 위해 싸우고, 상대는 안지만이 등판할 상황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싸운다.

팬들은 만루 위기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이닝을 먹어치우는 그를 두고 ‘만루변태’라고 부른다. “나도 ‘끝판대장’이나 ‘애니콜’ 같은 멋진 별명 하나 갖고 싶긴 해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남들이 ‘똥개’와 ‘만루변태’라고 부르면 그게 제 별명이죠. 친근하니까 그렇게 불러주는 거잖아요. 그게 제 인생이죠.”

선발과 마무리에 비해 빛이 나지 않는 중간계투라는 보직. 그러나 그는 꾸준히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해갔다. 13년 전 최경량 투수였던 안지만은 이제 한국프로야구의 최우량 불펜투수가 됐다. 지난해 말 FA(프리에이전트)로 4년간 65억원에 계약하면서 중간계투로 고생하는 다른 ‘미생’들에게 희망을 던졌다. 5일 대구 LG전에서 KBO리그 최초로 4년 연속 20홀드를 작성했다. 8일까지 155홀드로 KBO리그 개인통산 최다홀드 신기록을 써나가고 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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