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 북한전 코드명 ‘생존경쟁’

입력 2015-08-07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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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축구대표팀 울리 슈틸리케 감독.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지금부터 선수들 물가에 풀어놓겠다
스스로 빠져나오는 이들만 함께 간다”

남자축구대표팀 ‘슈틸리케호’는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2015동아시안컵(1∼9일·중국 우한)에서 1승1무(승점4)로 1위를 달리고 있다. 9일 우한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릴 3위 북한(1승1패·승점3)과의 대회 최종전 결과에 따라 2003·2008년에 이어 통산 3번째 정상에 설 수 있다. 하지만 우승 여부 못지 않게 북한전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태극전사들의 ‘코드명-생존경쟁’이다.

울리 슈틸리케(61·독일·사진) 감독은 동아시안컵을 앞두고 국내에서 한 축구인을 만나 뼈 있는 메시지를 남겼다. “난 지금부터 우리 선수들을 물가에 풀어놓겠다. 여기서 스스로 빠져나오는 이들만이 끝까지 나와 함께 할 수 있다.” 이는 슈틸리케 감독이 이번 동아시안컵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또 어떤 방향으로 팀을 이끌지를 명쾌하게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애초부터 명분과 실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유럽파 등을 총 동원할 수 없는 현실에 따라 K리그와 일본 J리그, 중국 슈퍼리그를 누비는 선수들로 팀을 꾸렸다. 이 과정에서 뉴 페이스들도 대거 승선했다. 이렇듯 풀 전력을 이루지 못해 새 승조원들의 성장 가능성을 점검하고, 세대교체를 꾀하는 쪽에 힘이 실렸다. 이는 명분이었다. 그러다 방향이 다소 수정됐다. 가능하다면 성과(실리)도 챙기기로 결정했다. 2일 중국과 1차전 2-0 쾌승이 계기였다. 그간 A매치에 나설 때 목표를 물으면 대개 두루뭉술한 대답만 반복한 슈틸리케 감독은 중국전 이후 처음으로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말을 했다.

그래도 철학은 양보하지 않았다. 5일 ‘숙명의 라이벌’ 일본과의 대회 2차전이었다. 1-1로 끝난 이날 경기에 ‘예상은 했어도, 이해는 어려운’ 라인업이 등장했다. 중국전에서 맹위를 떨친 선수들이 대거 빠졌다. 일본전이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라지만 계획은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게 슈틸리케 감독에게는 더 중요했다. 결국 선수 대부분을 ‘생존경쟁’이란 물가에 풀어놓는 데 성공한 셈이다.

물론 동아시안컵이 ‘물가 탈출’을 최종적으로 가늠할 절대적 무대는 아니다. 우한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게 되더라도 소속 팀 활약에 따라 다시 승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에게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도 이미 시작됐다. 앞으로 테스트 기회를 얻기가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앞서 그는 “대표팀 문은 항상 열렸지만 나가는 문도 열려있다”고 했다. 냉정해도 그게 대표팀이다.

다가올 북한전은 태극전사들에게 물가를 탈출해 끝까지 슈틸리케호와 함께 할 티켓을 쟁취하느냐 아니냐를 가늠할 더 없이 중요한 무대다. ‘물가에서 살아남을’ 선수는 누가 될까.

우한(중국)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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