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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기조차 버거운 탄광 속에서 일하며 삶의 희망을 찾던 광부들, 그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 있다. 버려진 폐탄광을 문화예술단지로 되살린 강원도 정선의 삼탄아트마인은 광부들의 땀과 숨결을 기억하며 예술을 캐내는 또 다른 의미의 광산으로 거듭나고 있다.
오래 전 독일 서부 도시 에센에는 세계 최대의 탄광 졸페라인(Zollverein)이 있었다. 60년대 우리나라에서 파견된 젊은 광부들이 구슬땀을 흘렸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오면서 석탄 산업은 점차 사양화되었고, 86년 졸페라인도 폐광의 길을 걸었다. 이후 페허로 방치되었던 졸페라인은 도시재생사업으로 인해 재생문화복합공간으로 재탄생했고,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이런 독일의 졸페라인을 꼭 닮은 공간이 바로 강원도 정선에 있는 삼탄 아트마인이다. 삼탄아트마인은 1964년부터 38년간 운영해오다 2001년 폐광된 삼척탄좌 정암공업소 시설을 문화예술단지로 되살린 곳이다. 삼척탄좌는 수천만 톤의 무연탄을 생산해내며 60~70년대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곳으로 광부의 수만 3천여 명이 넘었던 대규모 광업소였다. 2001년 폐광된 삼척탄좌는 ‘폐광지역 복원사업’ 계획에 따른 정부의 지원과 전시 연출가 김민석 대표의 협업으로 약 12년 만에 대대적으로 변신했다. 최근 삼탄아트마인은 ‘2015년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과거 탄광에서 석탄을 캐던 광부들의 고된 삶을 재조명해 새로운 문화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삼탄아트마인을 찾아간다.
예술 작품이 된 삼척탄좌 40년의 역사
삼탄아트센터
로비로 들어서는 입구 한 편에 인상적인 예술 작품이 눈에 띄었다. 손가락 끝이 검게 물든 수 백 개의 목장갑이 겹겹이 붙어있는 작품. 삼척탄좌 광부들의 노고가 형상화된 이 대형 설치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삼탄아트센터의 정체성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1~4층으로 이루어진 삼탄아트센터는 삼척탄좌 시절에 사무 공간, 공동 샤워실, 장화를 세척하는 세화장, 수직갱을 움직이던 운전실로 이루어진 종합사무동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예술가들의 손길을 거쳐 삼탄역사박물관, 현대미술관 캠Contemporary Art Museum, 예술놀이터 그리고 작가 스튜디오 등으로 재탄생했다.
로비 라운지가 있는 4층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아트 레지던스는 내, 외국인 작가가 상주하며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방 15개가 각기 독특한 양식의 콘셉트 가구로 꾸며져 있고 일반 관람객들도 테마 체험방으로 이용할 수 있다. 방 번호가 독특하게 850으로 시작하는데 이곳의 해발고도를 나타내는 것이라 더욱 재미있다. 3층으로 내려가면 삼척탄좌의 40년 역사를 고스란히 보존한 전시 공간이 나타난다. 당시의 각종 기록물들을 비롯해 광부들이 실제 사용했던 여러 가지 장비와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심지어 광부들의 실제 월급명세서까지 전시되어 있어 흥미롭다. 삼척탄좌는 다른 광산에 비해 채탄 작업이 까다롭고 어려운 편이어서 광부들의 보수가 높았는데, 당시 공무원 급여의 약 2배 이상이나 되었다고 한다. 신체검사도 사관학교 입시보다 까다로워서 건강한 신체와 높은 보수 수준을 가진 이곳 광부들은 신랑감으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다시 한 층 아래로 이동하여 세계미술품 수장고와 함께 다양한 전시를 만났다. 특히 과거 광부들이 이용하던 샤워장에서는 ‘아프로디테 거품의 비너스전(이명한 작가)’이 펼쳐지고 있었다. 온 몸에 석탄 범벅이 된 채 작업을 마치고 나온 광부들이 거뭇한 석탄 때와 하루의 노고를 말끔히 씻어내던 샤워장은 약 300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현대적인 시설이었다. 비누 거품으로 노고를 씻어내던 광부들을 대신해 그리스 신화 속 주인공 아프로디테 비너스가 샤워장에 자리하고 있었다. 거품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 비너스와, 거품을 내며 석탄 때를 벗는 광부들, 신화와 현실 속의 거품이 주는 의미를 시대적으로 재해석한 전시였다.
1층에는 예술놀이터 작가 스튜디오를 비롯해 어린이들이 직접 오감체험을 할 수 있는 상상뷔페 미술관, 광부의 작업복과 장비들을 직접 걸쳐보는 광부체험 포토존 등 여러 체험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다음 관람 포인트로 이동하는 도중 인상적인 공간과 마주했다. 광부들이 작업용 장화를 씻어내던 세화장 위로 하얀 천이 천장에서부터 길게 늘어져 있었다. 푸른 조명을 받아 얼핏 음산한 느낌도 들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웨딩드레스였다. 그 시절 이 탄광의 광부들은 결혼식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전시된 웨딩드레스는 1960년대 광부의 아내가 실제 빌려 입었던 것으로 검은 탄광 속 광부의 아내가 된 순백의 신부를 대조적으로 표현한 전시였다.
광부들이 만든 거대한 조형예술작품
레일바이뮤지엄
아트센터 본관 1층에서 연결다리를 건너면 레일바이뮤지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삼척탄좌에서 캐 올리는 모든 석탄을 집합시키던 시설로 그 중심에 직경 6미터, 깊이 600미터의 원통형 수갱과 조차장이 있던 곳이다. 당시 광부들은 1회에 400명씩 실어 보낼 수 있는 케이지를 타고 지하 채탄 현장으로 끊임없이 투입됐다. 4분에 1회 씩 20톤의 석탄을 끌어올리며 연간 50만 톤의 굴진 암석을 처리할 수 있었던 삼척탄좌의 권양 능력은 국내 최대였다. 레일바이뮤지엄의 내부는 온통 회색빛이다. 어두운 내부를 밝혀주는 건 작고 네모난 창문, 밝은 햇살을 받고 있는 푸르른 풀들이 창문의 프레임에 걸려 마치 갤러리에 걸린 한 장의 그림 같았다. 운이 좋았는지 관람객 하나 없이 조용했다. 오로지 철제 계단을 밟는 한 사람의 발소리와 천장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정체 모를 여성의 애잔한 노랫소리뿐. 과거에는 수많은 광부들이 북적거렸을 공간이라 생각하니 이곳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다.
지하 채탄 현장까지 광부들을 실어 나르던 권양기 근처로 다가가니 입구 위에 큰 표지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우리는 가정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그 속에 직장을 사랑한다.’ 광부들이 케이지에 탑승하기 전 한번은 꼭 볼 수밖에 없었을 만큼 크게 걸려있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한명의 광부로서의 사명감을 되새겼을 그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곳이 아릿해졌다. 선로에 조금 더 가까이 내려 가보기로 했다. 되도록 난간을 잡지 않는 게 좋다는 관계자의 말을 금세 잊고 습관처럼 난간을 잡았다. 언제부터 쌓여있었던 것인지 모를 새까만 석탄 가루가 손에 묻었다. 평소라면 미간부터 찌푸렸을 테지만 이조차도 이 공간을 느끼는 특별한 체험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탄차가 바쁘게 오갔던 선로는 작은 기찻길을 연상케 했다. 갱도 입구에 서 있는 노란 탄차는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았고 선로 위에 놓인 분홍 꽃들은 검은 선로 위에서 더욱 붉게 빛나고 있었다. 곳곳에 놓인 안전모, 외롭게 누워있는 장화 한 짝, 먼지가 가득 쌓인 전구, 작은 것 하나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조차장은 광부들이 만든 거대한 조형예술작품’이라고 쓰인 팜플렛의 설명이 새삼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빈티지 컨셉의 공장 레스토랑
레스토랑 832L
레일바이뮤지엄을 빠져나와 정원의 자갈길을 밟다보면 레스토랑 832L이 나타난다. 해발 832m에 위치했다 하여 ‘832L’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레스토랑은 과거 탄광의 기계들을 제작, 수리하던 공장동이었다. 지금은 여러 예술가들의 손길을 거쳐 빈티지 콘셉트의 아름다운 레스토랑으로 재탄생됐다. 2~3층 높이의 시원한 천장과 모던한 조명들, 곳곳의 손때 묻은 기계들이 마치 가구처럼 전시되어 독특한 운치를 만들어낸다.
832L에서는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스테이크, 스파게티, 피자 등의 양식과 강원도의 제철 나물로 만든 비빔밥 등의 한식 요리를 모두 즐길 수 있다. 대만 진과스의 광부도시락을 연상케 하는 ‘삼탄 광부 도시락’ 같은 이색 메뉴는 이곳만의 추억을 남기기에 충분한 음식이다.
레스토랑 옆에는 동굴 ‘와이너리 뱅’이 있다. 오늘 정선의 기온은 한여름을 방불케 할 만큼 무더운 날씨. 뜨거운 햇볕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지만 와이너리 뱅에 들어가자마자 금세 싹 사라졌다. 동굴 안은 찬 입김이 나올 정도로 서늘하다 못해 춥기까지 했다. 수직갱 개발 전 석탄을 운반하던 수평갱 832L이 동굴 와인 저장고 뱅VIN, 불어로 포도주라는 의미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한 여름에도 서늘한 기온연 평균 약 12도를 유지해 천연 냉장고 역할을 한다. 이곳에는 프랑스산 보르도, 부르고뉴 와인, 캘리포니아, 칠레산 와인 등 다양한 포도주들이 보관되고 있다. 동굴 와이너리라고 하기에는 작은 규모지만 무더운 날 잠시 쉬었다 가기에 좋은 포인트다.
광부들의 노고를 기억하며
기억의 정원
광부들의 삶에는 언제나 안전사고의 위험이 상존한다. 갱도 입구에 붙여져 있는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는 푯말처럼 당시 광부들의 가족들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한 사고에 늘 노심초사 했을 것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광산에서는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일어나고 있다. 기억의 정원은 채탄 현장에서 희생된 광원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장소다. 석탄을 캐는 광부의 실루엣으로 조형된 커다란 녹슨 철판이 우뚝 서 있다. 멀리서 보고 단순히 이곳을 상징하는 예술품이겠지 생각했던 광부 조형물은 추모의 탑이었다. 이 추모의 탑은 1974년 900갱에서 갱도 내 출수 사고로 희생된 26명의 광부들을 비롯한 안전사고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 힘든 삶을 살아가던 광부였지만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앞장섰던 그들을 산업전사로 기억하자는 의미의 공간이다.
기억의 정원에 서서 삼탄 아트마인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석탄을 캐는 광부의 조형물 뒤로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조차장의 권양기, 아트센터의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시절 광부들이 지금의 이곳을 다시 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매캐한 먼지 속에서 석탄을 캤던 탄광이 이제 아트 갤러리로서 예술을 캐내는 곳이 되었다. 과거 우리나라의 경제 산업을 이끌었던 광부들의 땀과 열정이 깃든 공간이기에 이곳 삼탄아트마인의 예술의 꽃은 앞으로도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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