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민병헌. 스포츠동아DB
1차전 부진 후 기계볼 수백개 치며 훈련
“기계 고장 안난 게 다행일 정도로 쳤다”
“선수도 아니다, 진짜.”
두산 민병헌(28·사진)은 최근 스스로를 향해 이렇게 되뇌었다.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 빠졌던 자신을 자책하는 표현이었다. 정규시즌 막바지부터 좀처럼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탓이 컸다. 팀이 3위 경쟁에 한창일 때 그다지 힘을 보태지 못했고, 포스트시즌 직전까지 좋은 감이 돌아오지 않았다.
두산 김태형 감독이 준플레이오프(준PO)를 앞두고 “그래도 큰 경기에서 민병헌이 타선에 딱 자리 잡고 있는 게 상대팀에게 주는 무게감이 다르다”고 힘을 실어줬지만, 10일 넥센과의 1차전에선 번번이 소득 없이 돌아섰다. 2-3으로 뒤진 9회말 1사 만루서 삼진으로 쓸쓸하게 물러난 순간이 가장 큰 고비였다. 민병헌은 “내가 선수도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정말 우울했는데, 다행히 (김)현수가 밀어내기 볼넷으로 점수를 내고 팀이 이겨서 한숨 돌렸다”며 “경기가 끝나고 기계에서 나오는 공을 수백 개 치고 집에 갔다.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실내훈련장 바닥에는 민병헌의 땀이 뚝뚝 떨어졌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기계가 고장 안 난 게 다행일 정도”로 많이 쳤다. 주변에서 ‘그럴 때일수록 좀 쉬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지만, 그는 “쉰다고 될 일도 아니다. 지난해도 9월 성적이 안 좋았고 체력 저하가 온 것 같아 쉬어 보기도 했지만, 일단 열심히 해봐서 안 되더라도 후회는 없어야 한다는 기분으로 벗어나려고 애썼다”고 설명했다.
그런 절박함은 결국 변화로 이어졌다. 11일 준PO 2차전 첫 타석에서 밀어내기 볼넷으로 타점을 올렸고, 이후 안타 2개를 때려내며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마지막 타석에서도 볼넷을 골라 100% 출루에 성공했다. 2차전 데일리 MVP는 민병헌이었다. 2차전이 끝난 직후 덕아웃으로 돌아오던 그는 “해냈다!”고 외치며 활짝 웃었다. 이제 조금씩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 기쁨이 온 얼굴에 가득했다. 마침내 기지개를 켠 민병헌은 두산의 남은 가을야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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