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웹툰이 드라마와 영화 등 영상 스토리텔링의 귀중한 원천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등 해외에서도 국내 웹툰에 대한 관심이 높다. 실제로 할리우드에서는 한국의 웹툰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덩달아 윤태호, 강풀, 손제호, 이광수, 박용제 등 많은 웹툰작가들이 콘텐츠 창작자로서 대접을 톡톡히 받고 있다.
그 이전 대중의 인기를 모은 것은 출판만화와 신문 연재만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고 신동우 화백이 그 이름을 새겼다.
1994년 오늘 오전 5시 신동우(사진) 화백이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자택에서 5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갑작스런 부음은 그와 그의 작품을 추억하는 많은 이들의 슬픔을 자아냈다.
신동우 화백은 1936년 함경북도 태생. 서울대 응용미술학과에서 공부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남다른 재주를 지녔다. 대학 시절에는 학보에 만화를 연재해 학비를 벌기도 했다. 6·25 전쟁의 와중인 1953년 부산에서 ‘땃돌이의 모험’이라는 창작만화로 데뷔했다.
그의 대표작은 1965년 소년조선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한 ‘풍운아 홍길동’. 무려 1200여회에 걸쳐 연재된 이 작품은 1967년 그의 친형인 신동헌 감독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개봉 4일 만에 10만 관객을 동원할 만큼 큰 화제를 모았다.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시초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에도 ‘검호 날쌘돌이’, ‘지구함대’, ‘우주소년’ 등 많은 작품을 통해 대중을 만난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바로 이 ‘홍길동’의 새로운 영화 작업에 몰두했다. ‘홍길동 95’라고 명명한 그는 연극배우 윤석화가 설립한 돌꽃컴퍼니와 함께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했다.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그 꿈은 포기할 수 없었고, 직접 원화 작업을 벌였다.
‘홍길동 95’는 1967년 작품처럼 신동헌 감독이 이후 제작을 총지휘하며 감독으로 나섰다. 일본과 싱가포르 제작팀도 합류했다. 그리고 연기자 김민종, 채시라, 윤석화, 신현준, 노영심 등이 목소리 연기를 펼치거나 주제가를 불러 ‘돌아온 영웅 홍길동’이라는 제목으로 1995년 말 개봉했다. 그해 대한민국 영상만화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해 신동우 화백의 20주기를 맞아 아들인 신찬섭씨가 부친의 이름으로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chadolbawee)를 개설했다. 현재도 많은 이들이 이를 통해 신 화백을 추억하며 소통하고 있다. 오늘의 풍부한 대중문화 콘텐츠를 일군 또 한 명의 선구자의 향취가 물씬하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