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올스타 최부식·여오현, 베테랑 리베로의 품격

입력 2015-12-18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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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최부식-현대캐피탈 여오현(오른쪽). 스포츠동아DB

최부식 ‘발 디그’ 투혼으로 국제적 유명세
여오현, 1만 수비 달성…리베로의 전설로
부담 많은 포지션, 강한 멘탈·자신감 필수


한국배구연맹(KOVO)은 9일 ‘2015∼2016 NH농협 V리그 올스타전’ 출전 선수를 발표했다. 크리스마스에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벌어지는 V리그 통산 11번째 올스타전이다( 2007∼2008시즌 올스타전은 열리지 않았다). ‘팀 코니’와 ‘팀 브라운’으로 나뉘어 각각 12명씩 발표된 올스타 멤버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있다. ‘팀 코니’의 여오현(현대캐피탈)과 ‘팀 브라운’의 최부식(대한항공)이다. 1978년생 동갑내기로 2001년 드래프트 3라운드 1·2순위로 성인배구 유니폼을 입은 두 베테랑은 이번 팬 투표 리베로 부문에서 나란히 1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V리그 통산 디그와 리시브에서 1·2를 달리며 수비의 전설을 만들어가고 있다. 공격수의 화려한 스파이크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리시브와 디그는 팀을 승리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V리그 12시즌 동안 중요한 역할을 조용히 수행해온 수비의 장인들은 또 하나의 훈장을 달았다. 여오현은 11번 모두 팬 투표 1위로, 최부식은 팬 투표 1위 5번과 전문위원 추천 2번을 합쳐 총 7차례에 걸쳐 올스타로 뽑혔다.


● 베테랑 리베로가 꼽은 가장 필요한 덕목은 자신감과 멘탈

두 사람에게 ‘리베로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멘탈과 자신감을 언급했다. 최부식은 “받는 것의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세터 이상이다. 특히 경기의 첫 공과 첫 리시브 부담이 크다. 수비수는 훈련 때처럼 평소 하던 대로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수를 하더라도 빨리 잊어버리고 다음 공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여오현이 최고”라고 밝혔다. 최부식은 “실수를 하면 의도적으로 더 크게 웃고 털어버리는 여오현의 자신감과 배짱이 부럽다. 여유가 있다”고 칭찬했다.

여오현은 “수비수, 특히 베테랑은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예전 생각을 하면서 ‘왜 안 될까?’라고 반문하면 약해진다. 멘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긍정적 마인드를 불어넣고, 이미 놓친 것은 잊어버려야 한다. 못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이 미련으로 남는다. ‘잘 할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오래 남으면 자신감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후회를 한다. 실수도 많이 한다. 배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수비수는 경기마다 생기는 후회와 실수를 빨리 잊고, 지금 날아오는 새로운 공을 향해 몸을 날려야 한다. 그래서 리베로는 육체보다 정신적 피로도가 크다. 야구의 마무리투수와 비슷한 심리상태다. 마무리투수의 전성기가 짧은 것은 육체적 피로도 크지만, 중요한 경기를 망친 뒤의 허탈함과 미안함이 쌓여가기 때문이다. 실업배구를 포함해 14년간이나 리베로 정상의 위치에서 버티고 있는 두 사람의 멘탈은 그런 면에서 국보급이다.


리베로는 자부심으로 산다-최부식

최부식(사진)에게 11월 5일 수원 한국전력전에서 나왔던 ‘발 디그’에 대해 물었다. 그날 최부식은 V리그의 전설로 남을 명품수비를 했다. 대한항공이 먼저 세트를 내준 뒤 2세트 5-6에서 한국전력 얀 스토크의 백어택이 산체스의 손을 맞고 뒤로 멀리 날아갔다. 대한항공의 웜업존을 지나 경기장 출입구 가까이까지 갔는데, 최부식이 쫓아가 오른발로 차서 대한항공 코트 안으로 우겨넣으면서 3단연결로 살려냈다. 이날 경기를 중계한 문용관 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최부식 선수가 배구선수 가운데 공을 잘 차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런 기술을 보여줄지는 몰랐다”고 칭찬했다.

이 플레이는 국제배구연맹(FIVB) 홈페이지에도 소개됐고, 최부식은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그날 먼저 세트를 내주고 팀 분위기가 나빠 내가 한 발이라도 더 뛰어야 할 것 같았다. 후배들에게 포기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주려고 뛰어갔는데, 잡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발을 내밀었다. 주위의 칭찬에 앞으로 역대 V리그 최고의 디그였다는 자부심을 가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부식은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작아 배구를 포기하고 6개월간 축구선수로 전업했던 경험 덕분에 축구를 잘 한다.


통산 1만 수비 달성은 1만 번의 희생-여오현

여오현(사진)은 16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벌어진 삼성화재와의 홈경기 4세트 도중 V리그의 금자탑을 달성했다. 6-7로 뒤진 상황에서 삼성화재 그로저의 스파이크를 받아내 통산 1만 수비(리시브+디그)를 달성했다. 이날 경기 전까지 5949번의 리시브와 4031번의 디그를 기록 중이던 여오현은 친정팀을 상대로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여자부에선 인삼공사 김해란이 10월 29일 도로공사전에서 처음으로 1만 수비를 작성했다.

최부식은 “잘해야 본전이지만 그래서 더 힘든 것이 수비전문선수”라고 얘기했다. 여오현은 “내가 한 번 코트에 더 굴러서 팀이 이길 수만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자리가 리베로다”고 정의했다. 어느 감독은 배구공을 수류탄이라고 표현했다. “코트 바닥에 떨어지면 모두 다 죽는다”며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고 선수들에게 강조했다. 그래서 리베로는 동료들을 위해, 팀을 위해 먼저 몸을 던져 코트에 떨어지는 공을 잡아야 한다. 구르고 다이빙한 까닭에 경기가 끝나면 온 몸이 욱신거리고 아프다. 날씨가 흐린 날이면 진통제를 찾는 사람도 있다. 그런 면에서 여오현의 1만 수비는 팀을 위한 1만 번의 다이빙, 1만 번의 희생이다.



● 외국인선수와 누구보다 가까이 있는 리베로

팀마다 외국인선수는 대부분 리베로가 담당한다. 처음 외국인선수가 팀에 합류하면 가장 먼저 그 선수와 맨투맨을 하는 이가 리베로다. 맨투맨은 본격 훈련에 앞서 2명의 선수가 공을 주고받으며 공격과 수비를 하는 플레이다. 최부식은 “맨투맨을 해보면 그 선수의 기량이 대충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선수기 훈련할 때 가장 먼저 공을 받아보는 역할도 리베로의 몫이다. 타점과 파괴력, 구질 등을 몸으로 확인해 코칭스태프에게 알려주는 역할도 리베로가 맡는다. 팀의 시즌 성패를 누구보다 먼저 예상하는 위치다.

감독들은 리베로에게 다른 역할도 요구한다. 평소 외국인선수를 챙기는 일도 리베로의 업무다. 삼성화재 신치용 단장은 감독 시절 베테랑들에게 이런 역할을 원했다. 여오현은 안젤코, 가빈, 레오 등과 쉬는 날 자주 놀아주고 가끔은 집으로 초대해 가족과도 지내게 했다. 빡빡한 훈련과 이국생활로 힘든 외국인선수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역할도 했다. 여오현은 “우승만 해준다면 모든 것을 다 받아준다”고 밝혔다. 이 또한 희생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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