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민은 지난해 말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은 뒤 12년간 몸담았던 삼성을 떠나 NC로 이적했다. 욕을 안 먹는 선수로 유명했지만, 이적으로 인한 비난은 그를 괴롭혔다. 박석민이 애리조나 투산의 NC 스프링캠프에서 스포츠동아와 인터뷰에 임했다. 투산(미 애리조나주)|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삼성서 보낸 시간 너무나 소중하지만
선수로서 계약과정 말 못하는 부분도
이젠 홈런 숫자보다 팀의 1승 더 간절
NC 동료들과 더 많은 우승반지 낄 것
박석민(31·NC)은 KBO리그에서 가장 욕을 안 먹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야구도 잘하고, 그라운드에서 재치 있는 모습도 자주 보여 팬들을 즐겁게 만들곤 했다. 김연아의 트리플 악셀 같은 ‘회오리 타법’ 등 다른 선수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재미를 선사해 ‘그라운드의 개그맨’으로 불렸다. 웃음폭탄이 터질 때마다 “전 사실 진지한 성격입니다”라고 말해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무결점 슈퍼스타로 꼽히는 이승엽(삼성)이 너무 잘생겨 현실감이 떨어지는 영화배우 원빈 같다면, 박석민은 연기파 배우 송강호처럼 편안한 느낌의 스타플레이어였다.
그러나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2년 동안 몸담은 삼성을 떠나 프리에이전트(FA)로 NC에 입단한 뒤 처음으로 욕을 먹었다. 항상 야구장에서 큰 행복감을 안기는 선수였던 만큼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았고, 일부는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박석민의 마음고생도 컸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을 다잡고 있다. 야구선수이기 때문에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보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뜻밖의 상황에서 마주하는 삼성 팬들의 응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힘이 되고 있다.
25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의 에넥스필드에 차려진 NC의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박석민은 여전히 씩씩했고, 분위기를 밝게 이끌었다. 또한 스스로의 주장대로 ‘진지’했다.
-12년 동안 한 팀에서 뛰었다. 예년 같으면 괌에서 훈련하고 있을 시기인데, 애리조나에서 NC 유니폼을 입고 있다.
“모두 잘해줘서 잘 적응하고 있다. 물론 12년이나 다른 팀에 있었기 때문에 캠프 장소가 다른 것처럼 아직은 낯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NC는 훈련시간에 뭔가 강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열심히 소리 지르며 하고 있다.”
-가장 사랑받는 선수였기에 떠난 자리에 대한 팬들의 아쉬움과 허탈감이 큰 것 같다. 박석민을 비난하는 야구팬이 생겼다.
“마음이 굉장히 아팠다. 댓글에 더 눈이 가기도 하고…. 삼성에서 보낸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우승을 5번이나 함께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수로 계약과정은 다 말하지 못하는 다른 부분도 있다. NC 시무식에 삼성 팬들이 몇 명 찾아주셨다. ‘더 열심히 해라, 우리도 더 열심히 응원하겠다’고 말해주셔서 굉장히 고마웠다. 캠프로 출국할 때 공항에서 만난 삼성 팬들도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삼성 팬들께는 죄송한 마음이 있다. 하지만 프로선수이기 때문에 감히 ‘더 열심히 할 테니 격려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인사를 드리고 있다.”
박석민 “첫 번째 목표는 우승”
인터뷰하는 동안 줄곧 20대 초반의 한 한국인 관광객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가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박석민에게 다가와 기념촬영을 청했다. 박석민이 어느 팀 팬인지 묻자 그 관광객은 “삼성 팬입니다. 관광 왔다가 일행과 떨어져 캠프를 구경 왔어요. NC에 갔지만 계속 잘하세요”라고 답했다. 박석민은 기분 좋게 웃으며 어깨동무까지 하고 사진을 찍었다.
-NC에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삼성에서 우승도 하고, 골든글러브도 받았다. 대형 FA 계약도 했다. 선수로서 이미 많은 것을 이뤘는데.
“책임감이 느껴진다. 어쩔 수 없이 매년 연봉 재계약을 신경 써야 했다. 하지만 이젠 홈런 숫자에 따라 연봉이 오르는 게 아니다. 개인기록보다 팀의 1승, 1승이 더 간절하다. 선수의 첫 번째 목표는 우승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성에서 우승반지 5개를 받았다. NC에서 더 많은 우승반지를 손가락에 끼우겠다. 올해 마지막 경기에서 김경문 감독님을 헹가래치는 순간 동료들과 함께 있고 싶다.”
-삼성에서 5번이나 정상에 섰다. 우승 복이 많은 것 같다.
“우승 복이라기보다는 동료 복이 좋았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항상 팀 멤버가 좋았다. 삼성에서도 좋은 동료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우승할 수 있었다. NC로 이적하니 또 좋은 동료들이 많다. 동료 복은 타고 난 것 같다. 꼭 함께 정상에 서고 싶다.”
박석민을 보며 많은 팬들이 웃는다. 독특한 회오리 타법은 손가락 부상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오래 고민한 끝에 고안한 타격폼이다. 수비 도중 꽈당 넘어지는 장면은 몸을 사리지 않는 근성의 부산물이다. 20대 초반 병역의무를 수행하던 중 아들을 얻으면서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시절도 있었다. “큰 아들 준현이는 박석민이 아닌 박병호의 팬이다. 아주 웃기는 상황이다”고 농담하면서 아내와 두 아들을 위해 언제나 전력을 다해 뛰었다. 박석민은 올해 목표에 대해 “절대 부상을 당해선 안 된다. 아프지 않고 많은 경기를 뛰고 싶다”고 말했다. 그를 보며 대구 팬들의 아쉬움이 ‘격하게’ 공감됐다. 그리고 앞으로 야구장에서 행복할 창원 팬들이 부러웠다.
투산(미 애리조나주) |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