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필석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극적인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었다. 연극 ‘프라이드’에서는 사회적인 통념과 내면의 목소리 사이에서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필립’을 연기했고 ‘스피킹 인 텅스’에서는 ‘사랑’이라는 복잡한 감정 속에 쌓인 ‘레온’과 ‘닉’역을 맡았고 뮤지컬 ‘아가사’에서는 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강렬한 내면을 의인화 시킨 ‘로이’ 역으로 분했다. 그런데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연출 신춘수?제작 오디뮤지컬컴퍼니)’의 ‘토마스’는 달랐다. 낯선 이를 만나는 느낌이랄까. 좀처럼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장르였다. 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작품 형식이 좀 색달라서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이 되긴 했어요. 연기 생활 11년이 지났지만 이렇게 애매모호한 작품을 해 보는 건 처음이에요. 그래서 묘한 기분도 드는데 이게 결코 싫지 않아요. 즐거운 낯섦이라고 할까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베스트셀러 작가 ‘토마스’가 그의 소중한 친구 ‘앨빈’과 함께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오가며 앨빈의 송덕문을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강필석은 순수했던 유년기부터 어른이 되면서 변해가는 모습을 현실적으로 담아내는 작가 ‘토마스’ 역으로 분했다.
강필석은 대본도 보지 않은 채 출연을 결정했다. 배우들 사이에서도 작품이 좋다고 평이 나 있었기에 해보고 싶었지만 연이 쉽게 닿질 않았다. 이번에도 스케줄이 하나가 취소가 돼 하게 됐다. 그는 “신춘수 대표님께 스케줄 때문에 못한다고 했다가 다시 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며 일부러 퉁명스럽게 답하시더라. (그게)농담인지 아니까 하겠다고 했다.(웃음)”
대본을 읽을 때는 재밌었지만 막상 연기로 풀자니 어려웠다. 단순한 이야기 흐름의 ‘스토리 라이프’를 연기하는 것이란 평생 가지고 있었던 습관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배우들의 특성상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끌고 가는 게 습관이 돼 있다. 그래서 생각보다 ‘토마스’를 연기하는 게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해결점을 찾아냈다. 정답은 관객에게 있었다. 강필석은 “무대는 관객과의 호흡을 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연습을 할 때 스태프들은 하도 많이 보니까 어떤 연기를 해도 반응이 없어요.(웃음) 그런데 무대에 서면 연습하면서 마음속에 물음표로 남아있던 것들이 점점 사라져요. 수많은 감정들이 무대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움직이거든요. 공연은 주로 관객들을 우리의 공간으로 초대하는 것이라면 이 작품은 관객과 같이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어려웠던 지점들도 관객들이 있기에 해결되는 것 같고요.”
토마스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 묻자 “아이고~”하며 부끄러워했다. 귀여운 목소리로 아이 연기를 하는 것이 처음이라 “재밌지만 부끄럽다”라고 말했다. 강필석은 “첫 연습날은 도망을 가고 싶었을 정도”라며 “아무도 팁을 주지 않더라”고 했다. 이에 그는 초등학교 5학년 조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고.
“잘못 따라하면 욕을 많이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하. 그런데 조카를 보니 ‘요즘 애들 무섭다’라고 해도 순수하더라고요. 어른보다 무언가를 향한 기대감도 훨씬 크고요. 동심 어린 마음도 있고요. 그것만 따라가자고 생각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성인까지의 인물의 과거와 현실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마치 오래된 앨범을 꺼내보는 것 같다. 작품을 보는 순간에도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르며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강필석도 연습 중 “오래된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라며 자신의 경험을 꺼냈다.
“공연 연습을 하고 있는데 제작사를 통해 연락이 한 통 왔어요. 호주로 이사 간 고등학교 동창이었어요. 되게 친했거든요. 그래서 연락처를 주고받고 통화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서로 기억하는 추억이 다르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토마스’나 ‘앨빈’도 서로의 추억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당연한 거지만 참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이어 “내가 전달하고픈 감정들 중 하나는 작품을 보면서 우리가 어린 시절에 가지고 있었던 신나고 기분 좋은 기억들을 다시금 기억하고 가져가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올해로 연기 생활 12년을 맞이한 그는 어느 때보다도 무대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과거 TV 드라마, 영화 등으로 활동을 넓히고자 소속사에 들어갔지만 무대에 서는 것만큼 행복하지 않았다. 강필석은 “무대 위에서는 치유를 받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무대에서 연기자 생활을 시작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무대 위에 있을 때 살아있는 걸 느껴요. 가장 행복하고 긴장되는 장소이기도 하고요. TV드라마, 영화를 다신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무대 위에서의 삶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고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