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벨바그의 신호탄 ‘400번의 구타’, 4월 13일 국내 최초 개봉

입력 2016-03-18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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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누벨바그의 눈부신 시작을 알린 프랑수아 트뤼포의 데뷔작이자 세계 영화사의 영원한 걸작 ‘400번의 구타’이 칸 영화제 감독상을 석권하며 누벨바그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걸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세계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걸작 ‘400번의 구타’는 무관심한 부모와 억압적인 학교로부터 벗어나고자 영화와 문학으로 탈출구를 찾았던 트뤼포의 유년 시절을 바탕으로 청소년기의 순수와 반항을 그려낸 작품. 오늘날 프랑스 영화의 신화처럼 전해지는 누벨바그의 눈부신 시작을 알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59년은 누벨바그의 탄생을 세계에 알린 해이다. 평론가로서의 활동과 단편영화 제작에만 몰두하던 영화작가들은 일제히 극장용 장편영화를 발표하고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자크 리베트와 장 뤽 고다르 감독은 그들의 데뷔작 ‘파리는 우리의 것’과 ‘네 멋대로 해라’를 완성했고, 클로드 샤브롤 감독은 두 번째 장편 ‘사촌들’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세상을 놀라게 했던 것은 트뤼포의 장편 데뷔작 ‘400번의 구타’가 칸을 정복한 것이다. 트뤼포는 ‘까이에 뒤 시네마’ 誌의 평론가 중 가장 날카롭고 공격적인 발언을 일삼는 '앙팡 테리블'이었으며, 종종 선배 영화인들의 작품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그러자 선배 영화인들은 혀를 내두르며 “네가 그렇게 아는 것이 많다면 직접 영화를 찍어 봐라”라며 비아냥거렸고, 그 중 한 명이 다름 아닌 유명한 영화 배급자였던 트뤼포의 장인인이었다. 장인의 말에 발끈한 트뤼포는 ‘400번의 구타’를 완성, 본격적으로 감독의 길에 들어선다.

‘400번의 구타’는 1959년 칸 국제 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 받았는데, 상영이 끝난 후 사람들은 칸의 새로운 물결로 일어선 28살의 트뤼포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고 이 작품으로 트뤼포는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 당시 태동하던 누벨바그의 물결 속에서 주목받는 감독으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다. 트뤼포는 기존의 프랑스 영화계는 물론 칸 국제 영화제에 대한 거친 비난과 독설로, 바로 전 해인 1958년 칸으로부터 참석을 금지당했다. 이렇듯 환영받지 못하던 그가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것은 매우 드라마틱한 사건이었으며, 그만큼 ‘400번의 구타’의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장 뤽 고다르는 이 사건을 두고 자신들의 기성 영화인들에 대한 승리로 간주하고 “영화작가들은 우리 덕분에 마침내 예술의 역사 속으로 진입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발언은 허풍이 아니었다. 그들이 치켜세운 작가들의 작품은 영화사의 고전이 되었으며, 누벨바그는 후대 영화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군이 되었다.

‘400번의 구타’는 파리의 두 개 관에서 개봉했지만 4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평단의 찬사 또한 끊이질 않았으며 ‘400번의 구타’를 통해 각광 받은 누벨바그는 하나의 현상이자 이슈가 됐다. 이렇듯 비평과 흥행의 동시 성공은 트뤼포를 명망 있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게 했으며, 그의 영화작업에 커다란 자유를 주었다.

한편 ‘400번의 구타’는 오는 4월 13일 국내 최초 정식 개봉 예정이다.

동아닷컴 김미혜 기자 roseli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주)영화사 백두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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