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KBS
KBS가 ‘태양의 후예’(이하 ‘태후’)를 두고 이렇게 흥을 감추지 못하는 데에는 ‘태후’ 한 작품으로 그동안의 시청률 부진을 말끔히 씻어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줄곧 이어진 주중 미니시리즈의 저조한 성적을 반등할 기회를 잡았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 이후 KBS 수목드라마는 ‘복면검사’, ‘어셈블리’로 경쟁의 쓴 맛을 봤다. ‘장사의 신-객주2015’가 그나마 동시간대 2위를 유지했지만 극히 일부 시청자만을 만족시키며 사극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저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KBS2 ‘겨울연가’(2002) 이후 현상 유지 상태였던 드라마 한류 시장에도 거대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송중기는 훈남 배우에서 한류 스타로 우뚝 섰고, 송혜교는 한류 여제임을 증명했으며 진구와 김지원 역시 한류 배우 반열에 올랐다. ‘태후’ 송중기가 중국에서 국민 남편으로 불린다는 소식만 봐도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광고 판매에서도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본방송 광고 완판에 이어 재방송 광고까지 완전 판매를 기록하며 93억 원대 수익을 냈다. 판권 판매와 제작지원, 간접광고(PPL) 등으로 130억원의 제작비를 첫 방송 직후 모두 거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나치면 반드시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 ‘태후’에 도취한 KBS는 선을 넘어섰다. 주연배우 송중기를 9시 메인 뉴스에 불러 유치한 질문을 하기 시작하더니 ‘연예가 중계’는 ‘태후’ 전용 방송이 됐고, ‘배틀 트립’ ‘여유만만’ ‘안녕 우리말’ 등 KBS 예능과 교양 프로그램도 ‘태후’로 채워졌다. 자사 홍보용으로 ‘태후’가 소비되고 있다. 급기야 KBS 사옥에선 ‘태후’ 수제 쿠키까지 판매한다.
자화자찬의 시작은 지난 3월 30일 KBS1 '뉴스9'부터였다. 이날 뉴스에선 배우 송중기를 초대해 ‘태후’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뉴스9'에 배우가 출연한 것은 송중기가 처음이다. 신드롬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탓에 송중기 출연 자체가 이상한 건 아니었다. 문제는 다수의 뉴스 꼭지가 ‘태후’와 송중기로 채워졌다는 데 있었다. 하이라이트 영상을 송중기 인터뷰 비화로 꾸몄고 해외 파병부대의 총선 참여 소식을 전하면서 굳이 "'태양의 후예'의 실제 모델이 된 부대"라는 멘트를 했다. '태후 특수…수출 날개'라는 기사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드라마가 이룬 업적을 설명했다. 송중기와의 인터뷰는 설상가상이었다. 송중기조차 "'뉴스9'에서 이런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다"라고 할 정도로 기대 이하였다. ‘태후’를 홍보하기 위해 공영방송 KBS는 자사 메인 뉴스가 지닌 무게감을 버렸다.
종영 후에는 갑질이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최근 발간된 '태후' 포토에세이는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50여 장 사진으로 구성돼 유명 도서 사이트 베스트셀러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포토에세이 품질, 제품 구성 등이 시원찮아 반품하는 구매자가 늘고 있다. 드라마 팬들이 꾸준히 요청한 감독판 DVD도 제작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됐다. 그러면서 제작사 측은 '태후' 소설과 영화를 준비 중이다. 돈만 좇는 이기적인 행동임이 분명하다.
정성효 KBS 드라마 국장은 “제2의 ‘태후’를 만들기 위해 ‘태후 프로젝트 2017’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정확하게 보면 ‘태양의 후예’는 송중기·송혜교·진구·김지원을 비롯한 출연진의 연기력과 매력, 화려한 화면과 완성도 높은 CG로 보는 재미를 만족시킨 드라마일 뿐 작품성을 언급할 정도는 아니다.
지금처럼 작품의 내실을 다지지 않고 포장하기에만 급급하다면 ‘태후 프로젝트 2017’의 미래가 시작 전부터 암울하다. 프로젝트를 말하기 전, 일단 꿈에서부터 깨어나야한다.
동아닷컴 전효진 기자 jhj@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