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기획] ‘안지만 흔든 포카칩’ 재치와 모욕 사이

입력 2016-05-1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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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장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감독·구단 욕할 땐 강제 제지하지만
과자봉지 조롱은 규제할 근거 없어
팬들 “표현 자유” “선수 모욕” 분분


KBO리그 삼성 안지만(33)이 4월29일 한화전 8회 2사 상황에서 등판했을 때, 대전구장 포수후면석에서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장면이 목격됐다. 한화를 응원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팬이 ‘포카칩’ 과자 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이 팬은 욕설도, 야유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게임의 일종인 ‘포커’와 ‘칩’을 연상시키는 글자가 찍힌 과자 봉지를 안지만의 시선이 닿을 만한 곳에 들고 있었다. 추정컨대 이 팬은 불법 원정도박 의혹을 받고 있음에도 시즌을 뛰고 있는 안지만을 향한 무언의 조롱을 가한 것이다. 안지만이 이 팬을 봤을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결과적으로 블론세이브를 했고, 삼성은 5-10으로 대역전패를 당했다.

경기는 끝났지만 논란은 남는다. 과연 이 팬의 행위는 재치인가? 아니면 모욕인가? 더 나아가 야구장에서 팬들이 행사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와 한계는 어디까지로 설정해야 하는가?


세이프티 캠페인 뚫은 포카칩

구본능 총재 취임 이후 KBO는 안전한 야구장 문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적어도 겉으론 그렇다. 2014년 5월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 관중이 난입해 심판이 위해를 당한 이후 이런 기조는 더욱 강화됐다. KBO의 ‘세이프티 캠페인’은 그런 흐름 속에서 나온 작품이다. 이에 따르면 구체적 반입금지물 목록에 ▲소음이 심한 응원도구 ▲구단과 합의되지 않은 현수막 등 모든 표현물 ▲경기 진행과 안전한 관람에 방해를 줄 수 있다고 구단이 판단한 물품 등이 해당된다. 굉장히 광범위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판단주체가 KBO가 아니라 구단으로 적시돼있다. 여론의 동향을 살필 수밖에 없는 대기업 기반 야구단이 팬을 규제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은 민감하고 조심스런 사안이다. 결국 아주 노골적이지 않는 한, 구단이 팬의 표현을 제재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국내 야구단들은 팀의 감독, 단장, 모그룹 등을 비난하는 플래카드는 야구장 보안요원들을 통해 치우도록 강제한다. 실제 사례도 있다. 공항처럼 야구장 입장할 때 제한적이지만 짐 검사도 한다. 그러나 과자 봉지는 ‘세이프티 규정’ 어디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의도는 명백해 보이지만 못하게 할 규정은 마땅치 않다. 더 나아가 메이저리그처럼 약물을 복용한 선수 앞에 주사기를 들고 있는 관중들이 나타나면, 염문설이 터진 선수가 보도록 파트너 여성(공인의 경우)의 사진을 들고 서 있다면, 이 관중을 쫓아낼 수 있을까?


● 표현의 자유는 그때그때 달라요?

심판과 KBO, 홈팀 한화 관계자들은 사견을 전제로 “애매하다. 단지 과자봉지를 들고 있는데 보안요원이 가서 ‘그러지 말아 달라’고 할 순 없을 것 같다”고 해석했다. 실제 삼성 구단은 한화 구단측에 별다른 요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서 공식 대응하는 순간, 문제는 공론화될 수밖에 없다. 야구계 일각에서는 “삼성이 어정쩡하게 안지만과 윤성환을 복귀시킨 ‘원죄’가 있는 한, 정면 돌파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의혹을 받고 있는 안지만과 윤성환이 이 정도 야유는 감수해야 된다’고 보는 시각과 ‘종결되지 않은 사안을 놓고 비열하게 선수를 흔드는 짓’이라는 시각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한편에서는 ‘대구라면 저럴 수 있겠느냐?’는 의견도 나온다. 세이프티 캠페인이 버젓이 있음에도 팬의 표현의 권리는 상황과 장소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다. 누가 나서서 판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 더욱 애매하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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