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로사리오의 이복 형 모이세스 파비안. 스포츠동아DB
로사리오 "날 위해 모든 것 기록"
한화 외국인타자 윌린 로사리오(27)가 타석에 설 때마다 한 외국인이 수첩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모습이 보인다. 주인공은 바로 로사리오의 이복형이자 집안의 장남인 모이세스 파비안(35·사진)이다.
과연 비밀수첩 안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최근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의 선수단 출입구 근처에서 볼펜을 들고 수첩을 정리하고 있는 파비안을 만났다. “항상 수첩에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적느냐”고 물었다.처음엔 ‘영업비밀이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이 나올 것으로 짐작하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물었는데, 그는 의외로 흔쾌히 “문제없다”며 자신의 수첩을 보여줬다. 몇몇 한화 구단 직원들도 흥미를 느끼면서 몰려들었다.
스페인어를 흘려 쓰고, 기호들을 함께 적어 단번에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러자 파비안은 이를 눈치 챘는지, 서툰 영어로 입에 침을 튀기며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듣고 보니 아주 기초적인 내용들이었다. 야구기록법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서인지 기호들도 야구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요약하자면, 첫 타석에서는 몇 구만에 쳤고, 두 번째 타석에서는 몇 구만에 삼진을 당했다는 내용이다. 투구수도 숫자 1을 세로로 그으면서 표기했다. 그 아래에 ‘3번째 타석에서 볼넷으로 밀어내기 타점을 올렸다’는 식의 추가 내용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어놓았다. 기자와 구단 직원들이 다소 실망스런 표정을 짓자 파비안은 수첩을 넘겨가며 다시 침을 튀기기 시작했다. 결국 “대단하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파비안은 악수를 청하며 흐뭇해했다.
비밀수첩이라고 하기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내용이었지만, 파비안은 동생 로사리오가 한국에서 적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로사리오는 “형은 나의 타격에 대해 항상 수첩에 기록한다. 적지 않으면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볼과 어떤 상황에서 삼진을 당했는지, 반대로 어떤 공에 홈런을 기록했는지를 알려준다. 정신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시즌 초반 부진에 빠졌던 로사리오가 부활한 데엔 매니저 역할을 하는 형 파비안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든든한 형의 응원 덕분이었을까. 로사리오는 7일 KIA전에서 2001년 롯데 펠릭스 호세 이후 대전구장에서 처음으로 기록된 비거리 140m 초대형 장외홈런을 터트렸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