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내 골프인생 A+줘도 모자라…올림픽, 리디아 고 가장 경계”

입력 2016-07-27 18: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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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 사진제공|KEB하나은행

박세리. 사진제공|KEB하나은행

‘원조 골프여왕’ 박세리(38·하나금융그룹)가 30년 동안 손에 들었던 골프채를 내려놨다. 지난 7일 US여자오픈을 마지막으로 골프인생에 ‘쉼표’를 찍었다.

박세리가 27일 서울 중구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 4층에서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약 30년간의 골프인생을 돌아보고 새로운 출발에 대한 계획을 공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골프는 나의 꿈, 도전하면서 성공”

“안녕하세요. 박세리입니다. 이렇게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됐네요.”

박세리가 웃으며 취재진과 마주했다. 미국 LPGA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귀국한 박세리는 이제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이따금 이런 자리가 마련된 적은 있었지만, 골프선수로서 좋은 성적을 거둬 기자회견에 모습을 보인 건 2010년 벨마이크로 클래식 우승이 마지막이었다.

박세리는 “3년 전부터 은퇴를 준비했고 마음의 준비도 했다. 하지만 불과 2~3주 전까지만 해도 선수로 뛰어서 그런지 실감을 못하고 있다. 아직은 어색하다”며 쑥스러워했다.

박세리는 골프의 여왕이다. 그가 남긴 역사와 발자취는 한국 여자골프사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홀로 떠나 새로운 길을 개척했고, 그 과정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성공을 이뤄냈다.

물론 꿈을 모두 이룬 건 아니다. 그토록 원했던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지 못한 채 골프채를 내려놨다. 박세리는 “골프는 나에게 꿈이었다. 골프를 시작하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리고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 그러면서 더 빨리 성장하게 됐고 배우면서 꿈을 이뤄냈다. 골프에서 이기고 지는 건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자신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돌아봤다.

이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루지 못한 건) 개인적으로 가장 아쉽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 중 이루지 못한 건 커리어 그랜드슬램뿐이다. 너무 아쉽지만 골프선수가 아닌 다른 꿈을 향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고 새 출발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박세리의 골프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순간은 역시 US여자오픈이다. 골프 하나로 국민에게 희망과 기쁨, 용기를 줬던 ‘맨발의 기적’은 박세리를 상징한다.

“1998년 US여자오픈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실 1997년 처음 US여자오픈에 나갔다. 4라운드 18홀 경기를 끝내고 나오면서 ‘이 대회에서 꼭 우승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한 다음 해에 우승했다. 아시겠지만 쉽게 우승하지도 않았다. 당시 우승이 골프인생에 큰 도움이 됐고, 그 순간이 가장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맨발의 기적은 대한민국의 골프역사를 바꿔 놨다. ‘세리키즈’를 탄생시켰고, 박인비, 신지애, 최나연, 이보미, 김하늘 등 숱한 제2의 박세리를 탄생시키면서 한국을 세계 최강의 골프대국으로 만들었다.

골프선수로서 모든 걸 이룬 박세리는 “골프선수로의 점수는 A+를 줘도 모자란다. 다시 태어나도 골프선수를 할 것 같다. 대신 그때는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나서 PGA 무대에서 뛰어보고 싶다”면서도 “당분간은 골프를 안 칠 것 같다”며 웃었다.

성공과 아쉬움을 모두 안고 있는 박세리는 이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한다. 가장 먼저 생각하고 있는 건 후배들을 위한 자신의 역할이다.

박세리는 “감사하게도 후배들이 잘 하고 있고, 잘 이어가고 있다. 욕심을 내자면 계속해서 (이런 분위기를) 이어가길 바란다. 나를 이어 박인비 그 다음 다른 선수로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고, 그런 길을 조금 더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방향을 찾아주고 싶다”고 새 인생에 대한 설계를 짧게 밝혔다.

박세리를 필드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공식적으로 한 번 뿐이다. 10월 인천 영종도의 스카이72골프장에서 열리는 KEB하나은행챔피언십에서 30년 골프인생을 마무리하는 은퇴경기를 끝으로 완전히 필드를 떠날 예정이다. 박세리에게 골프는 무엇이었을까.

“골프를 통해 많은 걸 얻었다. 희생하면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았다. 도전이라는 기회를 얻었고 도전하면서 성공이 돌아왔다. 그리고 (박세리라는) 이름 석자를 남기게 됐다. 감사하다.”

“최선 다한 선수들 따뜻하게 격려해주길”

골프채를 내려놓은 박세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는 리우올림픽 여자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직이다. 막중한 책임과 임무가 뒤따르지만 박세리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자리다.

“아직은 선수 박세리가 더 익숙하다.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어색하다”는 박세리는 “최우선은 선수들의 안전이다. 그 부분에 가장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 남자 선수들의 경기가 끝난 뒤 곧바로 여자 경기가 열려 연습할 시간이 부족할 듯하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이런 생활은 익숙하다. 큰 영향없이 경기에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올림픽 준비상황을 밝혔다. 그러면서 감독 박세리는 “아무래도 리디아 고가 라이벌이 될 것 같다. 상승세를 타고 있어 위협적인
존재가 될 듯하다”고 말했다.

감독으로서 할 일도 많다. 박세리는 전날 대한골프협회를 찾아 약 2시간 정도 긴 대화를 나눴다. 올림픽에 대비해 선수들의 생활부터 경기에 입고 나갈 유니폼까지 꼼꼼하게 챙기면서 의견을 나눴다.

박인비의 올림픽 참가결정에 대해선 큰 기대를 걸었다. 박세리는 “박인비 선수가 오랫동안 부상으로 고생했다. 올림픽 불참을 생각할 만큼 컨디션에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고민 끝에 출전을 결정한 박인비 선수에게 고맙고, 함께 경기하는 선수들에게도 굉장히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감독으로서 메달 획득에 대한 욕심은 당연하다. 하지만 박세리는 “금·은·동메달을 모두 목에 걸고 돌아오고 싶은 생각도 있다. 그러나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다. 금메달이 아니어도 좋으니 선수들이 경기에서 최선을 다 해주길 바란다. 잘 했을 때보다 최선을 다하고 돌아왔을 때 따뜻하게 안아주었으면 하는 것이 감독으로서의 바람이다”고 선수들을 먼저 생각했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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