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태 ‘두 줄선에 V표시’-김도훈 ‘검정색 점 하나만’-모중경 ‘빨간색 선 쭉~’-이정민 ‘검정색 점 3개’-박결 ‘빨간점+파란점=태극마크’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프로골퍼들이 사용하는 골프공에는 자신의 공임을 구별하기 위해 다양한 문구와 그림, 기호 등을 표시한다. 최근에는 단순한 식별을 떠나 아들의 이름, 우승을 기원하는 마음 등 각자의 개성을 담은 특별한 사연을 적기도 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제공|타이틀리스트·KLPGA
박상현, 아들 시원 군 이름 ‘C1’ 새겨
이동민 ‘해마다 3승 하자’ 별 3개 표시
“나는 빨간색 점, 나는 파란색 점 세 개, 나는 은색 줄 하나….”
프로골퍼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골프공에 문구나 기호 또는 다양한 그림 등을 새겨놓는다. 경쟁자의 공과 구별하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나 재미난 사연도 많다. 단순한 식별용을 떠나 최근엔 개성의 표현으로 활용되고 있다.
박성현. 사진제공|KLPGA
● 시크한 박성현, 은색 선 하나 끝
‘남달라’ 박성현은 골프공 하나도 그냥 쓰지 않는다. 마크에는 자신만의 특별함이 담겨 있다. 많은 선수들이 사용하는 것처럼 골프공에는 선 하나를 긋는다. 대신 남들과 다르게 검은색이나 빨간색이 아닌 은색을 선호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예쁘고 다른 선수들이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갤러리를 하다가 은색의 선이 새겨진 골프공을 주웠다면, 십중팔구 박성현의 공일 가능성이 높다.
마크 말고도 그가 특별히 따지는 게 한 가지 더 있다. 번호다. 골프공에는 기본적으로 식별을 위해 번호가 새겨져 나온다. 박성현은 5·6번을 선호한다. 이유 역시 매우 단순하다. 박성현은 “왠지 더 잘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은색의 선이 그려진 골프공을 주웠지만, 2번이나 3번이라면 박성현의 공이 아닌 가짜일 가능성이 크다.
공을 티(Tee) 위에 올려놓을 때도 신경을 쓰는 게 있다. 공에 그려놓은 선이 드라이버의 페이스에 닿지 않도록 반대편으로 놓고 티샷을 한다. 사인펜으로 칠한 선이 닿으면 묻거나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박성현처럼 보통의 선수들은 공에 선을 긋거나 점을 찍는 등 단순하게 마크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일본프로골프(JGTO) 투어 상금왕에 도전 중인 김경태(30·신한금융그룹)는 골프공에 새겨져 있는 로고 위에 짧은 줄을 하나 긋고, 뒷부분에는 글자 위에 빨간색 줄을 긋는다. 그리고 작게 ‘V’라고 표시한다.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남들과 구분하기 위해서 이런 독특한 표시 방법을 찾아냈다. 8년째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2013년 먼싱웨어 매치플레이 우승자 김도훈(27·신한금융그룹)은 검은색으로 점 하나를 찍고, 매일유업오픈 우승자 모중경(45)은 빨간색 선을 그린다. KLPGA투어에서 통산 8승을 기록 중인 이정민(24·BC카드)은 털털한 성격만큼 마크도 단순하다. 검은색으로 점 3개를 찍어 놓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쭉 이렇게 마크하고 있다. 이승현(25·NH투자증권)은 라운드마다 마크의 색깔을 다르게 한다. 로고 위에 색깔을 칠하는 게 전부지만, 1라운드 때는 핑크색, 2라운드 주황색, 3라운드는 빨간색을 쓴다. 숫자도 마찬가지다. 1라운드 때는 1번, 2라운드 3번, 3라운드 2번, 4라운드에서는 다시 1번을 쓴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숫자 ‘4’가 새겨진 공은 잘 선호하지 않는다.
이승현 ‘라운드마다 다른 색으로’-박상현 ‘C+1=C1’-이동민 ‘빨간색 별 3개’-배선우 ‘왕관’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프로골퍼들이 사용하는 골프공에는 자신의 공임을 구별하기 위해 다양한 문구와 그림, 기호 등을 표시한다. 최근에는 단순한 식별을 떠나 아들의 이름, 우승을 기원하는 마음 등 각자의 개성을 담은 특별한 사연을 적기도 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제공|타이틀리스트·KLPGA
● 아들 이름부터 왕관까지
국내 5승을 자랑하는 박상현(33·동아제약)은 골프공에 영문 ‘C’와 숫자 ‘1’을 더해 ‘C1’이라고 새겨 놓는다. 그리고 제조사의 로고 위에 줄을 한 번 더 긋고, 숫자 옆에는 빨간색의 점을 찍는다. ‘C1’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바로 아들 시원군의 이름이다.
우승에 대한 염원을 볼 마크로 대신하는 선수들도 있다. 2014년 동부화재 프로미오픈 우승자 이동민(25·바이네르)의 골프공에는 3개의 별이 그려져 있다. 해마다 3승씩 하자는 다짐이다. 별 하나가 우승트로피 하나를 의미한다. 배선우(22·삼천리)는 왕관을 그린다. 여왕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공에 새겨 넣는 것이다. 배선우는 올해 2개의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며 꿈을 이뤘다.
2014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박결(20·NH투자증권)의 볼마크에도 사연이 숨어 있다. 빨간색과 파란색 점을 위아래로 찍는다. 박결은 “고등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후 태극기 모양으로 점을 만들어서 마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특별하진 않지만, 공을 티 위에 올려놓을 때는 꼭 숫자가 보이도록 한다.
단순한 볼마크 하나에도 경기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내려는 노력도 숨어 있다. KPGA 투어 상금랭킹 1위를 달리고 있는 최진호(32·현대제철)는 2개의 표시를 해 둔다. 하나는 십자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T’자 모양이다. ‘T’자는 퍼트 시 어드레스에 도움을 얻기 위한 표시다. 이태희(32·OK저축은행)도 퍼트할 때 도움이 되도록 긴 선을 그려 넣는다.
골프여제 박인비(28·KB금융그룹)의 골프공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왕관이 새겨져 있었다. ‘골프여제’, ‘여왕’을 뜻했다. 골프공을 후원하고 있는 일본의 회사에서 아예 프린트를 해서 제공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왕관이 없는 공을 사용하고 있다.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니 내년부터는 금메달로 바꾸면 어떨까.
이밖에도 양수진(25·파리게이츠)은 골프공에 다양한 그림을 그려 사용하고, 갤러리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