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영화 ‘밀정’ 엄태구 “밀정과의 만남…이젠 연기가 재밌다”

입력 2016-09-26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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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엄태구.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영화 ‘밀정’이 발굴한 배우

700만 관객이 선택한 송강호 주연의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제작 워너브러더스코리아)은 한명의 배우를 ‘발굴’했다. 일본 경찰 하시모토 역의 엄태구가 그 주인공이다. 주연 못지않은 실력과 개성으로 스크린을 압도하는 이 배우는 관객에 짜릿함을 안긴다. 2∼3년 뒤 한국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실력자’로 성장할 것 같은 예감이다. ‘밀정’의 관객수를 늘려가는 또 다른 주역을 만났다.


● 일본 경찰 하시모토 역 엄태구

늘 공포였던 연기…얼마전까지 ‘그만할까’ 고민
일본어 대사·감정표현 완벽 소화…연기 자신감

엄태구(32)는 영화를 자주 보는 관객이 아니라면 조금 낯선 배우다. 2007년 공포영화 ‘기담’으로 데뷔해 10년 가까이 연기했고, 독립영화 ‘잉투기’를 통해 실력도 인정받았지만 ‘밀정’을 만나기 전까지 폭넓은 대중의 관심권에는 들지 못했다.

그 스스로도 “‘밀정’ 전과 후로 나뉠 것 같다”고 했다. 연기에 임하는 태도와 의욕이 ‘밀정’을 거치면서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배우라는 직업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외적으로 알려져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연기 하면서 ‘재미있다’는 말을 꺼내기도 이번이 처음이다. 촬영현장은 나에게 늘 공포였고 무서웠다. 내 연기 외에 다른 걸 보지 못했으니까.”

엄태구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 영화 촬영 때 당일 일정을 마친 배우들이 한 데 어우러져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에 좀처럼 끼지 못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불러주면 ‘네’라고 외치며 달려갔다”는 그는 “못 마시는 술을 억지로 입에 넣으려 하면 송강호 선배가 말리기도 했다”고 돌이켰다.

엄태구는 ‘밀정’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목적을 처음부터 분명히 드러내는 인물. 영화에는 빠져 있지만 어릴 때 일본으로 귀화해 일본인임을 자처하는 조선인이란 배경이 있다. 갈등하는 송강호와 달리 ‘뼛속까지’ 친일파다. 상당한 분량의 일본어 대사는 물론 극적인 감정 표현을 주로 했다. 그의 연기에 대한 다양한 평가도 쏟아진다. 기대의 시선이 더 크다.

“불과 얼마 전까지 연기를 그만할까 고민했다. 5∼6년 동안 거의 매년 그런 고비가 왔고, 부모님께 내 뜻을 말씀드리기도 했다. 적성에 안 맞는 것 같고, 내가 잘 바뀌지 않았다.”

활발한 성격보다 내성적인 성향이 강한 엄태구는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연극을 경험한 뒤 연기학원을 찾아갔다. 부모는 반대하지 않았다. 대신 한 달 학원비 60만원을 어렵게 구해 아들에게 건넸다. “지하철역에서 엄마를 만나 학원비를 받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는 그는 “그때 엄마 얼굴을 떠올리면 눈물이 핑 돈다”고 했다.

배우 엄태구.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그림을 그리는 아버지, 재즈댄스 강사로 활동한 어머니의 영향은 엄태구에게 영향을 미쳤다. 알려졌다시피 그의 형은 독립영화로 출발해 ‘잉투기’로 이름을 알린 엄태화 감독. 11월에는 강동원 주연의 영화 ‘가려진 시간’을 내놓는다.

이들 ‘엄형제’를 향한 영화계의 기대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엄태구는 ‘잉투기’에 이어 형의 영화 ‘가려진 시간’에도 출연했다. “어릴 때 형의 영향을 엄청 받았다. 형이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오면 옆에서 따라 봤고, 형이 사 놓은 DVD를 하나씩 꺼내 봤는데, 그 영화들은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의 목록이 됐다.”

실제로 만난 엄태구에선 하시모토 형사처럼 ‘사나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3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순수한’ 매력을 풍겼다. 얼마 전 ‘밀정’을 상영한 캐나다 토론토 국제영화제를 다녀온 소감을 밝히면서 “13시간 동안 비즈니스석에 앉아 가니 정말 좋았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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