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냉정한 스포츠세계에서 ‘정상’은 단 한 명에게만 허용된다. 그렇기에 정상에 선 이는 외롭다. 이상화(27·스포츠토토)는 늘 1등이었다. 한국을 뛰어넘어 세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여자 500m 금메달을 시작으로 무려 6년간 각종 국제대회에서 최정상에 올랐다. 자신의 두 번째 올림픽이던 소치동계올림픽에서도 엄청난 부담감과 견제를 이겨내고 다시 한 번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이상화의 적은 그 자신’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기량을 자랑했다.
그랬던 이상화에게 브레이크가 걸렸다. 2016~2017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1~4차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성적이 나쁜 건 아니었다. 1, 2차 대회에서 은메달 2개를 목에 걸었고 3차 대회 1차 레이스에서는 동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다른 이도 아닌 이상화의 성적표이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9~11일 네덜란드 헤렌빈에서 열린 4차 대회에서는 500m 레이스 초반 코너링에서 실수가 나오면서 9위에 그쳤다.
부상 여파가 컸다. 이상화는 1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1차 대회를 시작하기 전부터 오른쪽 종아리 통증이 있었는데 평범한 근육통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2차 대회 마치고 좋지 않아서 검사를 받았는데 근육이 찢어졌다고 하더라. 대회를 앞두고 있어서 제대로 치료를 못 하고 뛰었더니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종아리 부상은 순간적으로 힘을 발휘해야 하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치명적이다. 부상으로 인해 400m~결승 구간에서 폭발적인 스퍼트로 결승선을 통과하던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감기몸살까지 겹치면서 컨디션이 떨어졌다.
압박감도 심했다.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해도 항상 1등이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러나 이상화는 쉬지 않았다. 거침없이 달려온 6년처럼, 지금의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바라보고 내일을 계획했다. 그는 “금메달은 없지만 그렇다고 기록이 예전과 크게 차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앞으로 세계선수권대회와 동계아시안게임, 더 나아가 평창올림픽이 목적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1~4차 대회 경험이 올림픽을 대비한 연습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어 “이번 대회에서 다른 것보다 내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며 “이제는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나의 레이스에만 신경 쓰겠다. 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한편 이상화는 27~29일 열리는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석한 뒤 종아리 부상 상태를 보고 월드컵 5~6차 대회 출전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