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역 루키’ 김남훈 “2년 전 인천AG 악몽 훌훌 털어냈죠”

입력 2016-12-1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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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시즌 KPGA 투어의 최대 기대주는 김남훈(사진)이다. 주니어 상비군과 국가상비군을 거쳐 2013년 태극마크를 달며 엘리크 코스를 걸어왔고, 지난 11월에는 전역 2개월 만에 KPGA Q스쿨을 29위로 통과하며 시드를 획득했다. 사진제공 | 월간 THE GOLF

■ 2017 남자프로골프 특급 신인의 등장

2년 전 통한의 은메달…곧바로 상무 입대
전역 2개월 만에 Q스쿨…내년 시드 획득

“군 생활 놀리던 동기들 이젠 날 부러워해
가끔 잠들기 전 우승하는 장면 상상해봐”


“제대하고 사회로 나오니 친구들이 가장 부러워합니다. 이제 시작이죠.”

2017시즌 국내 남자프로골프투어에 활력을 불어 넣을 신인이 등장했다.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 골프 남자개인전 은메달을 목에 건 뒤, 상무에 입대했다가 늦은 나이로 프로 첫발을 내딛는 김남훈(22)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 아시안게임의 아쉬움 훌훌 털어내

김남훈은 꽤 오랜 시간 태극마크를 달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를 하던 그는 6학년 때부터 골프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찍 시작하지 않았지만 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주니어 상비군과 국가상비군을 거쳐 2013년 마침내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그의 목표는 하나였다.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의 금메달이었다.

“오로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살았다. 당시엔 그게 인생의 전부였다.”

김남훈이 아시안게임을 목표로 굵은 땀방울을 쏟아내는 동안 동기, 후배들은 하나둘씩 프로무대로 진출했다. 유럽무대에서 맹활약 중인 이수민, 국내와 일본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창우와 동기. PGA와 유럽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시우, 왕정훈이 2년 후배다. 중·고교 시절 국가대표와 상비군으로 활약하며 한솥밥을 먹었던 동기와 후배들이 프로무대에서 폭풍성장을 하는 동안에도 김남훈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4년 9월 인천 드림파크 골프장에서 아시안게임이 개막했다.

김남훈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골프는 아시안게임에서 2회 연속(2006도하· 2010광저우) 남녀 금메달을 독식했던 효자종목이었다. 게다가 안방에서 열리는 만큼 이번에도 남녀 개인과 단체전 4개의 금메달을 모두 목에 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남훈은 그 중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마지막 날 4라운드까지 치열한 메달 경쟁이 펼쳐졌다. 김남훈은 13번홀까지 대만의 반정쭝과 동타를 이뤄 메달 색깔을 다퉜다. 하지만 불운이 김남훈의 꿈을 가로막았다. 14번홀에서 친 티샷이 뒤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 탓에 생각보다 멀리 날아갔다. 그리고 공은 치기 어려운 구역에 떨어졌다. 다행히 벌타없이 구제를 받았다. 그러나 다음 상황이 좋지 못했다. 드롭을 한 공이 돌 사이에 멈췄다. 골프규칙상 지면에 박힌 돌멩이는 구제 대상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그대로 공을 놓고 쳐야했고, 두 번째 친 샷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결국 그 홀에서 더블보기를 한 김남훈은 반정쭝에게 금메달을 내주면서 은메달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오직 금메달만을 향해 달려왔던 김남훈의 꿈이 한 순간 날아가고 말았다.

“아시안게임의 악몽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오로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살아왔다가 꿈을 이루지 못하니 한 순간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두 달 뒤 상무에 입대했지만, 그곳에서도 선후배들이 측은하게 바라보는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힘이 들었다.”

9월 전역한 김남훈은 비로소 웃음을 되찾았다. 그리고 “2년 전의 악몽을 훌훌 털어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는 만큼 앞으로 다가 올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웃었다.

김남훈. 사진제공|월간 THE GOLF



● “2년 군 생활 헛되지 않아”

2017년은 김남훈에게 새로운 시작의 해다. 첫 출발은 11월 있었던 KPGA 코리안투어 퀄리파잉스쿨(이하 Q스쿨)이었다. 김남훈은 29위로 내년 시드를 받았다. 평범한 성적이지만, 전역 2개월 만에 이룬 성과이기에 의미가 컸다.

“전역을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 신나서 놀기보다는 ‘앞으로 나가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걱정이 앞섰다. 마치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초년생의 마음이었다.”

Q스쿨은 1년 농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무대다. 여기서 떨어져 시드를 얻지 못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Q스쿨은 지옥의 레이스로 불린다.

전역 후 곧바로 Q스쿨을 치러야 하는 부담은 심리적인 압박으로 다가왔다. 아마추어 시절의 성적만 놓고 보면 김남훈의 Q스쿨 통과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Q스쿨 최종전까지 올라온 선수들의 실력은 백지 한 장 차. 한 명도 만만히 볼 상대가 없다.

첫날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10위권에 올라 부담을 덜었다. 그러나 둘째 날 위기가 찾아왔다. 크게 흔들렸고 순위는 커트라인까지 떨어졌다.

“그날 밤 아무 생각하지 않고 잠이 들었다. 부담을 가질수록 또 다른 걱정이 생길 것 같았다.”

마음을 가다듬은 김남훈은 3라운드에서 다시 순위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마지막 4라운드에서 큰 실수를 하지 않으며 공동 29위로 내년 시드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김남훈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고 집중했고, 실수가 나와도 ‘하나 정도는 괜찮아’라면서 부담을 덜어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최선을 다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안도했다.

Q스쿨이 진행되는 동안 위기도 많았고 고비도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크게 흔들리면서 또 다른 위기에 빠질 수 있었던 상황도 많았다. 그때마다 김남훈을 바로 잡은 건 군에서 터득한 정신력이었다.

“2년 동안 군 생활을 하면서 철이 든 것 같다. 아시안게임이 끝났을 때만 해도 무엇을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고, 스스로 진로를 결정할 수 없어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군 복무를 하면서 많이 성숙해졌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2년은 좋은 시간이었다.”


● “늦었지만 늦지 않았다.”

김남훈의 프로 데뷔는 동기나 후배들에 비하면 2∼4년 이상 늦었다. 빠른 경우 18세, 늦어도 20세에는 프로로 전향하는 게 일반적이다. 군 복무를 하면서 늦었다는 생각에 조급함이 들 때도 있었다. 친구들도 그런 김남훈을 놀렸다.

“(이)수민이나 (이)창우를 만나면 ‘제대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면서 놀렸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더 조급한 생각이 들곤 했다.”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았던 국방부 시계는 어느 덧 20개월이 흘렀고 김남훈은 멋지게 전역했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군 복무를 하지 않은 동기들이 김남훈을 가장 부러워한다.

전역 후 모처럼 동기, 후배들과 라운드를 하는 기회가 생겼다. 이수민, 김시우 등과 오랜만에 샷 대결을 펼친 김남훈은 자신이 한발 뒤쳐져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더 많은 연습과 땀 밖에 없음을 알았다.

김남훈은 새로운 계획표를 짜고 있다. 아마추어 시절을 끝내고 프로로 새로운 세계에 첫 발을 내딛으면서 큰 꿈을 설계하고 있다. 그는 “내년에는 국내무대에 올인한 뒤 아시안투어와 유럽투어를 거쳐 미 PGA 투어로 진출하는 꿈을 꾸고 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건 아니다. 그러나 꿈을 이루기 위해 나머지 계획표를 완성해 나갈 생각이다. 동기나 후배들에 비하면 늦게 출발하는 편이지만, 아직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군에 있을 때 빨리 나가서 경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는데, 그때의 각오를 되새기며 내년 한 해 동안 모든 걸 쏟아 붓겠다”고 각오를 단단히 했다.

김남훈은 “가끔씩 잠에 들기 전에 우승하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18번홀에서 마지막 퍼트를 끝내고 우승 세리머니를 펼치는 상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면서 “내년에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더 많은 땀을 흘리겠다”고 다짐했다.


● 김남훈

▲1994년 1월생
▲2005∼2006년 주니어상비군
▲2007∼2011년 국가상비군
▲2013∼2016년 국가대표
▲2014∼2016년 상무(전역)
▲2012년 중고연맹회장배 남고부 우승, 송암배 아마골프 우승, 전국체전 남자개인전 금메달
▲2013년 매경오픈 베스트아마, 아시안게임 개인, 단체전 은메달 등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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