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대표팀 해외파 차출과 MLB 선수보호

입력 2016-12-24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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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WBC 대표팀을 맡을 당시 김인식 감독.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그냥 가라고 해~”

결국 김인식 감독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일본 도쿄돔에서의 일이다. 당시에도 김 감독은 2009년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이었다. 결전지인 일본에 입성한 대표팀이 WBC 1라운드를 코앞에 둔 3월3일이었다. 부상선수 교체 마감시한은 4일 오전 7시까지였다.

이 급박한 시국에 왜 김 감독은 선수 한 명을 써보지도 못한 채 돌려보내려고 했을까. 당시 대표팀에 남느냐, 떠나느냐를 놓고, 관심의 한가운데 있었던 선수는 추신수(34)였다. 추신수는 그 시절, 클리블랜드 소속이었다. 팔꿈치가 안 좋은 상태였다. 그러나 대표팀 참가의지가 강했다. 클리블랜드는 할 수 없이 도쿄까지는 보내줬는데 WBC의 주최자 격인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파견한 트레이너가 따라붙었다. 이때부터 문제가 불거졌다.

이 트레이너의 허락을 얻지 못하면 경기 출전은 말할 것도 없고, 훈련조차 제대로 시킬 수가 없었다. 실제 대표팀은 3월3일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와 평가전을 치렀는데 추신수는 벤치만 지켰다. 클리블랜드 구단은 “1라운드는 1경기, 2라운드는 2경기만 외야수로 뛸 수 있다”는 단서까지 달았다.

2009년 WBC 대표 당시 추신수.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여기까지도 부글부글할 판인데 이 미국 트레이너는 ‘4일 부상선수 교체 마감시한까지 추신수의 몸을 최종적으로 지켜보고 WBC 참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되자 현실적으로 오전 7시 전에 추신수를 테스트하려면 새벽 5~6시에 도쿄돔을 빌리고, 추신수는 물론 KBO 관계자와 대표팀 코칭스태프까지 나가야 된다는 얘기가 된다. 김 감독이 폭발한 것은 바로 이 시점이었다. 결국 KBO의 적극적 중재와 추신수의 강력한 출전의지로 꼭두새벽 테스트 없이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됐다. 제한된 상황에서도 추신수는 2라운드 결정적 한방으로 대표팀의 결승행에 기여했다.

행복한 결말이었기에 묻혔지만 역사는 7년이 흐른 2016년 또 반복될지 모른다. 현재 상황에서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WBC 대표팀 합류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극적으로 있을 수도 있다. 이때 메이저리그 해당 구단이나 사무국에서 선수 보호를 이유로 대표팀의 운신을 제약한다면 이제는 그때처럼 ‘갑질’에 일방적으로 또 당할 수 없다. WBC가 사실상 메이저리그의 수익사업인데 아주 중요한 파트너인 한국야구가 저자세일 이유가 없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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