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이원근 “2016년, 평생 잊지 못할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입력 2016-12-27 14: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믿음과 ‘노력’을 배웠습니다.”

배우 이원근이 연기 데뷔 후 처음으로 스크린에 첫 발을 내디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믿음’과 ‘노력’의 중요성을 배우고 얻게 된 귀중한 경험이었다. 그는 지난해 여름부터 올해까지 영화를 찍으며 필모그래피의 절반을 쌓았다. 그 시작은 영화 ‘여교사’(감독 김태용)였다.

“제가 백 살이 돼도 변하지 않을 터닝 포인트는 2016년입니다.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처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일했던 시기였습니다. 정말 많은 걸 배웠습니다.”

직접 만난 이원근은 “낯을 가린다”는 본인의 말과 다르게 수다스러웠다. 그는 “오늘 마지막 인터뷰니까 조금 더 해요”라고 열의를 불태웠다. 이후에도 ‘새벽에 명동에서 혼자 사색했던 일’, ‘최근 꽃시장에 다녀온 일’ 다양한 주제로 말을 이어갔다. 현장 스태프들이 말리지 않았으면 몇 시간을 더 이야기할 태세였다.

‘여교사’는 이원근의 스크린 첫 데뷔작이다. 영화 ‘그물’이 먼저 개봉했지만, 그가 처음으로 밟은 현장은 ‘여교사’였고, 그의 이름 앞에도 영화배우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극중 발레리노를 꿈꾸는 고등학생이자 김하늘(효주 역)과 유인영(혜영 역) 사이에서 갈등을 불씨를 키우는 소년 ‘재하’ 역을 맡았다.


○ “나만 믿으라던 김태용 감독, 현장에서 서로 삐쳐 말 안 할 때도”


처음 ‘재하’ 역을 맡게 됐다는 소식을 들은 이원근은 기쁨과 동시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언론시사회 때 재차 “영광스럽다”, “감사하다”는 말을 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경험이 전혀 없는 내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니 얼마나 많은 분들이 불안해 하셨겠나”라며 “그런데 김태용 감독님이 ‘아무 걱정 말고 나를 믿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감독님이라는 것을 떠나 제게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 됐습니다. 서로 ”형·동생“이라 부를 정도로요. 제 아버지와도 통화를 할 만큼 친밀해졌죠. 인생을 살며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잖아요. 당연히 감사함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진짜 보답을 하고 싶은데 아직은 제가 그러기엔 너무 신인이고…. 앞으로 열심히 해야죠.”

하지만 너무 흔한 ‘좋고 좋은’이야기가 아닌가. 촬영을 하며 김 감독과 싸우지는 않았냐고 묻자 그는 “엄청나게 싸웠다”고 솔직히 말했다.

“감독님이 저는 모니터를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제가 어떻게 연기했는지 궁금하잖아요. 감독님은 끝까지 ‘나만 믿으라’며 안 보여주셔서 싸웠어요. 서로 삐쳐서 다음 날 한 마디도 안 했죠. 그러다 제가 ‘술 한 잔 하자’고 했고 감독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너 오늘 죽었어’라고 하며 풀었어요. 그 다음날 둘이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촬영장으로 출근했고요.(웃음)”

이후, 이원근은 전적으로 김 감독을 믿기로 했다. 그날 이후부터 모니터를 못 보더라도 신경쓰지 않았다.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 촬영 전 철저하게 ‘외로워지는’ 연습…친구·매니저 없이 매일 발레연습

이원근은 무용수를 꿈꾸는 고등학생을 연기하기 위해 발레를 배웠다. 그런데 여기에 김 감독은 미션을 더 줬다. ‘친구를 만나지 말 것’, ‘매니저 없이 이동할 것’, ‘분풀이는 나(김 감독)에게만 할 것’이었다.

“‘재하’는 엄마가 집을 나갔고 완벽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잖아요. 철저하게 외로워하라고 하시더라고요. 화풀이를 할 거면 무조건 자기를 불러서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매니저 없이 매일 마포에서 분당까지 지하철을 타고 발레 연습을 하러 갔어요. 친구도 못 만나니까 연습이 끝날 때 막차 타고 오신 감독님과 술을 마시며 화풀이를 해댔죠.”

하루에 10~12시간씩, 한 달여 기간 동안 발레를 배운 이원근은 “주어진 숙제를 포기하지 않고 해낸 적인 이번이 처음”이라며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싸워보자’는 심정으로 발레를 했다”고 말했다.

“발레가 단순한 게 아니더라고요. 라인이 생명인 안무라 손끝부터 발끝까지 온 신경을 다 써야 했어요. 처음엔 너무 엉성해서 큰일 났다 싶었는데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시간만 있으면 더 잘할 것 같았다는 아쉬움도 있더라고요. 선생님이 정말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셨어요. 해주셔야할 레슨시간을 훨씬 초과해서 가르쳐주시고 다른 레슨 시간에도 들어오라고 하셔서 제가 늘 몸을 움직이게끔 하셨어요.”

‘발레’라는 것이 땀이 식은 채로 움직이면 무용수가 몸을 다칠 수 있어 이원근은 하루 종일 몸을 움직여야 했다. 영화에서 땀이 흠뻑 젖은 채 나오는 모습도 이원근이 촬영 전 수 시간 동안 동작으로 몸을 움직여 낸 땀이다.

“최근에 휴대폰 사진을 보는데 촬영 중에 입은 옷이 다 젖었더라고요. 정말, 처음에요. 제가 뭔가를 포기하지 않고 시도를 했던 건 ‘발레’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책임감이라는 게 있으니 도중에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특히 저보다 더 열심히 하셨던 선생님 때문에 스크린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경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 “나이가 들어도 변치 않을 제1의 터닝 포인트는 2016년”

올해 이원근은 드라마 ‘꽃미남 로맨스’, ‘굿와이프’, 영화 ‘그물’, ‘그대 이름은 장미’, ‘여교사’, ‘환절기’, ‘괴물들’ 등을 찍으며 야무진 활동을 펼쳤다. 쉬지 않고 활동할 수 있었던 그에겐 “참 감사한 해”였다.

“많은 것들을 배우고 또 그걸 사용할 수 있는 시기였다. ‘여교사’를 통해 공부했던 오묘한 눈빛이나 표정 등을 배웠다면 그걸 ‘환절기’에서 써먹었어요. 처음으로 다 써먹은 작품이에요. (웃음) 그걸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도 받아서 의미가 남달라요.”

앞서 말했듯, 올해로 4년차 배우가 된 이원근. 활동을 하면서 자신이 상상했던 ‘배우’라는 이미지와 많이 닮아 있을까. 이원근은 “배우가 내 꿈은 아니었다”라며 “이 직업은 정말 출중하신 분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배우생활을 시작하면서 먼 미래를 생각해봤을 때, 한 획을 긋는 배우가 되는 것보다 꾸준히 열심히 했던 배우라고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처음엔 연기를 하면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숙명이나 사명감 같은 게 필요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하는)순간은 즐기더라도 배우로서 의식은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전 제 그릇을 너무 잘 알아서 게을러지거나 건방져지진 못할 것 같아요.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노력’만이 방법이라는 것을 알거든요. 먼 미래의 저는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